세계적인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35·아르헨티나)가 지난해 5월 인스타그램에 ‘#비지트사우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홍해 위 요트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사진을 게시했다. 이 해시태그는 사우디아라비아 관광청 브랜드다. 뉴욕타임스(NYT)는 메시가 사우디 관광청과 관광 홍보 계약을 맺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가 공개한 양측의 계약서에 따르면 메시는 매년 1회 이상 사우디에서 가족 관광을 해야 하며 소셜미디어 홍보, 광고 촬영, 홍보캠페인 등에 참여하는 대가로 약 200만달러(약 25억6000만원)를 받는다. NYT는 4억7000여명의 팔로워를 가진 메시의 계정이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계정 중 하나라고 짚었다.
사우디가 최근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게임, 관광 등 광범위로 소프트파워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석유를 넘어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다만 인권과 민주주의 탄압으로 악명이 높은 사우디가 막대한 오일 머니를 이용해 해외 영향력을 키우고 대외적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시도라는 비난도 나온다.
최근 사우디의 막대한 자금력은 골프, 축구 등 글로벌 스포츠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사우디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지난 2021년 10월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3억500만 파운드에 인수했다. 뉴캐슬은 이후 막대한 자금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며 2022~2023시즌에서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PIF는 사우디 국내 리그인 ‘사우디 프리미어리그(SPL)’를 유럽 10대 리그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목표 하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잇따라 영입하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사우디 구단인 알나스르에서 뛰고 있고, 지난해 발롱도르 수상자인 카림 벤제마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알이티하드로 이적을 확정했다. 아울러 사우디는 그리스, 이집트와 함께 2030년 월드컵 공동 유치에도 출사표를 낸 바 있다.
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는 지난 7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전격 통합을 발표했다. LIV 골프는 2021년 10월 출범한 뒤 막대한 자금력으로 대회 때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하며 빠르게 몸집을 키워왔다. FT에 따르면 사우디는 LIV 골프와 PGA 투어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약 30억 달러를 투입했다.
젊은 층이 좋아하는 게임 또한 사우디가 공을 들이는 분야다. 사우디는 전체 인구 3600만명 가운데 35세 미만 인구가 약 70%에 달하는 데다, 빈 살만 왕세자 또한 게임 애호가를 자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PIF가 운영하는 사비 게임스 그룹(Savvy Games Group)은 지난해 1월 출범한 뒤 약 1년 6개월 동안 전 세계 게임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고 구축하는 데 약 80억달러를 지출했다. 사비는 올 초 중국의 e스포츠 기업 VSPO와 스웨덴의 게임 퍼블리싱 회사 ‘엠브레이서 그룹’의 지분을 인수했으며, 지난 4월에는 미국의 모바일 게임 개발사 ‘스코플리(Scopely)’를 49억달러에 인수했다.
그밖에 사비는 일본의 비디오 게임 개발사 닌텐도, 미국의 게임사 일렉트로닉 아츠(EA) 지분도 대량으로 매수했다. 모바일 게임사 가레나의 모회사 SEA의 지분도 크게 늘렸다. 국내 대표 게임사인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지분에도 투자한 바 있으며, 특히 PIF는 현재 엔씨소프트의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사우디는 향후 250개의 게임 회사와 스튜디오의 본거지가 되고, 2030년까지 게임 산업을 통해 3만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VSPO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향후 e스포츠 산업에도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우디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기 위해 관광 산업 확대에도 돈을 쏟아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관광개발기금(TDF)은 사우디의 호텔·리조트 브랜드인 ‘하비타스’를 확장하는 데 15억 리얄(약 5조1100억원) 규모의 기금을 투자했다. 하비타스는 기존 2개의 부동산 외에 사우디 전역에 최대 6개의 새로운 부동산을 설립할 계획이다.
TDF는 지난 2020년 6월 150억 리얄의 초기 자금으로 설립됐다. TDF 홈페이지에 따르면 사우디는 2030년까지 국내 여행을 포함한 관광객 수를 현재의 두 배가 넘는 연간 1억 명으로 늘리고, 관광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에서 1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우디는 최근 두 번째 국적 항공사인 ‘리야드 에어’를 설립하기도 했다. 기존 국적 항공사인 사우디아항공이 하지, 움라 등 순례를 위한 비행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리야드 에어는 관광 목적의 비행에 주력할 방침이다. 최근 보잉 787 드림라이너 39대를 확보한 리야드 에어는 2025년 비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리야드 에어는 현재 사우디 수도 제다 근처 사막에 건설 중인 킹 살만 국제공항을 통해 2030년까지 연간 1억2000만명의 승객을 100개의 목적지로 수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같은 사우디의 소프트파워 전략에는 미래 석유자원 고갈에 대비해 석유 외에 경제를 다각화하겠다는 목적이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을 추진하며 네옴시티 건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사우디를 글로벌 물류 및 관광의 미래 허브로 재브랜드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의 이 같은 소프트웨어 전략은 지난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등으로 사우디의 인권 침해와 민주주의 탄압 논란이 불거지자 ‘스포츠 워싱(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 등을 통해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해외 영향력을 키우려는 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FT는 “사우디는 빈 살만 왕세자의 사회 개혁에도 불구하고 인권 침해에 대한 오명을 떨칠 수 없었다”며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주저하게 됐다”고 짚었다.
인권단체 ‘아랍세계의 지금을 위한 민주주의’ 사라 레아 휘트슨 이사는 “스포츠, 게임, 엔터테인먼트, 패션, 금융에 이르기까지 미국 경제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우디의 전례 없는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자말 카슈끄지 암살 이후 일부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 관련 사업에서 손을 떼자, 그때와 같은 미국 기업들의 사업 철수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