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에서 보은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충북 보은군 회인면 건천리에 수리티(재)가 있다. 이른 아침 수리티 위 푯대봉에서 내려다보면 청주영덕고속도로가 옅은 안개를 뚫고 뻗은 전경이 장쾌하다. 여명 속에 불화살이 날아가는 듯하다.
인근 피반령(皮盤嶺)과 함께 수리티에 조선시대 선조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 대감과 연관된 전설이 서려 있다.
이원익이 경주 목사로 부임하던 중 청주에 도착하자 경주 향리직 우두머리인 호장이 가마를 갖고 마중나와 있었다. 음력 6월 더운 날씨에 가마꾼들이 힘들어했다. 고개가 나타나자 호장은 “이 고개는 삼남지방에서 제일 높아 가마를 타면 가마꾼들이 피곤해 회인에서 3∼4일 묵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속히 부임지에 도착하고자 했던 이원익은 가마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속았음을 눈치채고 “신분이 다른 너와 내가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 내가 걷고 있으니 너는 기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과 무릎이 피투성이가 돼 고개를 기어 넘어야 했던 호장은 또 다른 고개를 마주치자 겁이 났다. 호장은 나무로 수레를 만들도록 한 뒤 수레에 가마를 실었다. ‘피발’이 돼 넘어 ‘피발령’, 수레로 넘어 ‘수리티(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한자로는 ‘피반령’ ‘차령(車領)’으로 적었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