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헌금하러 왔다가 헌금 받고 가지요[개척자 비긴즈]

입력 2023-06-18 15:40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열아홉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잠 못들 만큼 설레기도 두렵기도 하다. 처음이 주는 흥분과 두려움을 스스로 들여다보니 서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히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처음 목사가 되었을 때, 처음 예배를 인도할 때, 처음 축도할 때, 처음 개척을 했을 때, 처음 성찬을 했을 때 등등 경력이 없다 보니 서툴고 익숙함 없이 날 것으로 해야 하는 부담감이 참 컸다.

선배 목사님들의 강의와 조언을 듣고 개척할 때 건물을 임대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척을 했다. 공간 임대 비용 아낀다고 끝이 아니다. 예배 처소를 마련했다고 예배가 절로 드려질 리 없다. 예배 준비를 위해 필요한 품목들을 하나씩 적어보다가 손목에 쥐가 날 뻔했다.

접이식 테이블 테이블보 볼펜 헌금함 헌금 바구니 헌금 봉투 비치용 성경책 성찬 기구 등등 필요한 것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수 쏟아지듯 흘러나왔다. 부교역자 시절 교회에 익숙하던 풍경, 당연하게 비치돼 있었던 비품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를 하려고 보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 따로 없었다.

‘이게 이렇게 비쌌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처음 자취방을 얻고 장보러 갔을 때 현타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다행히 하나님께선 개척자에게 필요한 동역자를 늘 곁에 보내주신다. 다이소 이케아 모던하우스 등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품질의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곳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헌금함은 다이소, 웰컴 테이블 소품들은 이케아, 각종 문구류와 테이블보 등은 모던하우스가 책임져 줬다.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과자를 받아먹다 처음으로 마트에서 과자를 고를 기회가 주어진 아이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마련이다. 생애 첫 선택 장애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마트에서 진열대를 수색하다시피 하는 개척자도 마찬가지다. 진열대를 수십번 오가며 시선을 뒀다 떼기를 반복하며 카트에 물건 하나를 소중하게 담는다. 핵심은 딱 하나다.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 이 과정엔 상당한 고민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성구를 구입하는 건 일반적인 물품과는 또 다른 세계다. 비슷한 물품이라도 금색이냐 은색이냐, 손잡이의 무늬, 모서리의 처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여기서도 진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발품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매주 처음 예배를 드리듯이 차에 음향기기들과 건반, 스크린 등 예배에 필요한 것들을 가득 싣고 토요일 늦은 저녁마다 주일 준비를 한다. 그래서 매주가 새롭고 매주 첫 예배와 같은 감격이 느껴진다. 물론 감격만 있는 건 아니다. 각종 장비들이 정갈하게 세팅된 예배공간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 은혜가 그리울 때도 있다. 이를 뛰어넘을 만큼 매주 새롭게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에 감격이 클 뿐이다.

‘매주 처음 드리는 것처럼 준비하는 개척자들의 예배지만 고난주일은 보다 새롭고 감격적으로 보낼 수 없을까.’ 개척 후 처음 맞는 고난주일과 고난주간을 어떻게 보내며 준비하면 좋을지 기도하고 생각하던 끝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용서를 선택하신 시간이 떠올랐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용서를 품고 이를 행하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고난주간 사역비’였다.

사역비의 다른 이름은 ‘예수님의 용서를 실천하는 비용’이었다. 예배 말미에 성도들에게 ‘고난주간 사역비’를 드리면서 구체적인 용서의 실천을 제안한다면 예수님의 용서가 더 깊게 우리 삶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말씀의 선포가 아멘으로 이어지고 고백과 결단이 삶 가운데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길 바랐다. 그리고 ‘고난주간 사역비’가 그 안에서 윤활류처럼 작용할 것을 기대했다.

늘 성도들로부터 헌금을 받았던 교회가 받았던 헌금을 성도들에게 사역비의 형태로 흘려 보낼 생각을 하니 적잖게 흥분이 됐다. ‘사역비로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3 5 7 10.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3은 너무 적고 10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제외다. 5와 7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의미를 더해 가치가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고민하던 끝에 결정을 했다.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주 다시 만나게 됨을 생각하며 일주일의 7, 성경에서 완전수로 이야기되는 7, 천지창조의 끝에 안식의 의미를 품고 있는 7. ‘그래. 7만원으로 사역비를 드리자.’

고난주일 새벽에 드디어 결단을 내리고 성도의 수에 맞게 예쁜 봉투에 사역비를 넣었다. 넣는 내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던가. 정말 그랬다. 그 물질이 용서로 쓰여질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니 설렘이 샘솟았다. 잠을 거의 못 잤던 고난주일의 새벽 피곤조차 잊었다. 2~3시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일어나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걸음에 용서라는 단어를 가지고 갔다. 예배가 시작됐고 말씀을 마무리 하는 시간에 ‘용서’를 주제로 사역비에 대해 성도님들께 말씀을 드렸다.

“이 사역비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이 도구가 지금까지 우리가 용서하지 못했고 우리 스스로 부정하며 밀어냈던 이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가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 안에 부모님 형제 자매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친구에게 밥 한번 먹자고 얘기를 했지만 잊고 지냈던 시간 때문에 연락이 끊어졌다면 사역비를 통해 다시 연결되길 바랍니다. 혹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사용해도 됩니다. 성도님들과 연결된 모든 사람들에게 사역비가 아름답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고난주간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용서를 함께 경험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성도들을 바라봤다. 다들 누군가가 떠올랐나 보다. 어깨가 들썩이고 눈물을 훔치는 분들의 모습도 보였다. 예배가 끝이 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떠오른 누군가가 마음 속 연못에 커다란 돌덩이를 던졌나 보다. 말씀의 씨앗이 우리 마음에 심겼고 사역비가 영양제로 투입됐으니 어떻게 주님이 역사하실지 한껏 기대가 됐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