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후 계약직’ 관행 있다면?…대법원 “재고용 기대권 인정”

입력 2023-06-18 15:07
대법원. 국민일보DB

회사에 정년퇴직 직원을 일정 기간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제도가 있고 관행적으로 실시돼 왔다면 노동자의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만약 부당해고가 인정된 근로자라면 해당 기간 임금까지 지급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법원은 정년이 된 근로자가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될 것이라는 기대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과 그 요건을 최초로 설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가 자신이 일하던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A씨는 한 제철소에서 방호·보안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2013년 해고됐지만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부당해고로 인정받았다. A씨는 해고 무효를 확인하고 밀린 임금을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부당해고가 인정된 만큼 밀린 임금이 얼마나 인정될지가 쟁점이 됐다.

이 회사는 근로자 정년을 만 57세로 정하되 정년 이후 기간제 근로자로 다시 고용해 만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A씨는 정년 이후 기간제 근로자로 취업할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되므로 계약직으로 일했을 경우 받을 수 있었던 임금까지 달라고 주장했다.

1심은 ‘재고용 기대권이 있다’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고용 시 회사에 별도 평가 절차가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회사가 A씨를 재고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판결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2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재고용 제도 도입 이래 A씨보다 먼저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들은 모두 기간제로 재고용됐다”며 “회사와 근로자들 사이에 정년이 되더라도 재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A씨는 계약직 임금분까지 ‘밀린 임금’으로 지급 받게 됐다.

대법원은 재고용 기대권의 요건도 새로 제시했다. 기대권의 요건은 ‘근로계약 등에 관련 규정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 실시 경위 및 기간 ▲해당 분야에서 재고용된 사람의 비율 ▲사업장 내 확립된 재고용 관행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재고용과 관련한 신뢰 관계 등을 바탕으로 기대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