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횡령으로 재판을 받던 중 피해자에게 횡령한 돈을 변제했다며 장부를 꾸며 집행유예를 받아낸 간 큰 피고인이 뒤늦게 조작 사실이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법원까지 기만한 범행 실체가 밝혀진 배경에는 회계사 출신 초임 여검사의 활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안양지청 인권·경제범죄전담부(부장검사 최재준)는 태양광 개발 기업 직원 A씨(42)에게 업무상 횡령·무고 혐의를 적용해 최근 구속 기소했다.
A씨는 태양광 발전소 부지를 사들여 시공한 뒤 계약자에게 분양하는 중소기업에서 자금 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는 회사 계좌로 들어와야 할 발전소 분양 대금 1억2000만원을 개인 계좌로 받은 혐의로 지난해 5월 불구속 기소됐다. 당초 발전소 2곳 분양대금 2억2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당했으나, 검찰은 1곳 1억2000만원으로 횡령 금액을 특정해 재판에 넘겼다. 수사를 받게 되자 고소인들을 허위 사실로 고소해 무고 혐의도 더해졌다.
A씨는 1심 재판 첫 공판에서 범행을 자백하며 피해자들에게 횡령금 변제를 마쳤다고 주장해 그대로 변론이 종결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후 피해금이 정말 변제됐는지 의심스럽다며 변론을 재개했다.
A씨는 자기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변제를 마쳤다는 계좌 출금 자료, 회계내역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변제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게 지난해 9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와 검찰 모두 항소하지 않으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윤세희(31·변호사시험 10회) 검사는 이 사건 공판검사였다. 초임 검사였던 그는 재판부가 피해 회복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재판을 재개한 것이 이례적이라고 생각하고 당시 상황을 기억해뒀다.
이후 같은 지청 수사 부서로 인사가 난 윤 검사에게 우연히 A씨에 대한 추가 고소 사건이 배당됐다. 회사 계좌로 부가가치세 환급금이 들어온 게 확인이 되는데 A씨가 계좌 비밀번호를 바꿔버려 금액 확인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윤 검사는 A씨가 첫 번째 횡령 사건 당시 재판부에 냈던 계좌 자료와 회계내역서 등을 기억하고 자료를 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회계사 출신인 윤 검사는 계좌 거래 내역과 실제 회계처리 내역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의문을 품은 윤 검사는 추가로 두 차례 계좌를 추적하고, 세무서 자료 등을 분석해 A씨가 앞서 재판에서 변제 내역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A씨에게는 동거녀가 있었는데, A씨는 먼저 회삿돈 1억3000만원을 동거녀 계좌로 보냈다가 자기 계좌로 보냈다. 이후 자기 계좌에 들어온 돈을 다시 회사 계좌로 보냈다. 그런데 1심 재판부에는 자기 계좌에서 회사 계좌로 이체된 거래 내역만 선별해 제출했다. 회삿돈을 또 횡령해놓고 자기 돈으로 피해금을 변제한 척 꾸민 것이다. 처음 회삿돈을 빼돌릴 때 가족이 아닌 동거녀 계좌로 보내 의심을 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 검사는 “A씨가 법원을 속이려 계좌 거래 내역까지 조작하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상당하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해 받아냈다. A씨는 결국 지난 9일 구속된 채 재판에 넘겨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