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호가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결장과 골 결정력 부재를 넘지 못하고 ‘남미 복병’ 페루에 무릎을 꿇었다. 아쉬운 경기 흐름 속에서도 이강인(마요르카)의 활약은 돋보였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6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평가전에서 전반 11분 내준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고 0대 1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페루와 통산 3차례 만나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1무 2패(1971년 0-4 패·2013년 0-0 무·2023년 0-1 패)의 열세를 이어갔다.
클린스만 감독은 4-4-2 전술을 꺼내 들었다. 최전방에 오현규(셀틱)와 황희찬(울버햄프턴)을 투톱 스트라이커로 내세웠다. 좌우 날개는 이재성(마인츠)과 이강인(마요르카)이 나섰고, 중앙 미드필더는 원두재(김천)-황인범(올림피아코스)이 담당했다.
‘김민재(나폴리)-김영권(울산)’이 빠진 센터백에는 박지수(포르티모넨스)-정승현(울산)이 포진했고, 좌우 풀백에는 이기제(수원)와 안현범(제주)이 배치됐다. 안현범에게는 A매치 데뷔전이었다. 골키퍼는 손흥민을 대신해 주장을 맡은 김승규(알샤바브)가 맡았다.
전반 초중반 수비진은 간격, 호흡, 공 처리 등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11분 만에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침투한 페루의 브라이언 레이나에게 왼발 슈팅을 내주며 실점했다. 한국은 몇 차례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번번이 막혔다. 후반 32분에는 이강인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에 조규성이 몸을 날리며 헤더를 시도한 게 골대를 살짝 벗어나 팬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강인은 경기 내내 좌우 측면을 오가며 손흥민이 빠진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풀타임을 소화하며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히는 활약을 펼쳤다. 그럼에도 팀의 패배에 웃지 못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벤치에 있던 손흥민은 실망한 표정의 이강인에게 다가가 볼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에 대해 “이강인은 이제 남미에서도 유명한 선수가 됐다. 경기 초반부터 공을 잡으면 2∼3명이 붙어서 협력 수비를 했다”며 “이강인의 경기를 보는 건 항상 즐겁다. 기대하게 된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그런데 지금은 성장할 시기다. 언제 드리블을 해야 할지 언제 원터치로 공을 돌려놓고 패스를 받을 위치를 찾을지 등을 고민할 시기가 왔다”며 “좋은 선수지만 혼자서는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고 평가했다.
‘스포츠 탈장’ 수술 여파로 회복 훈련을 해온 손흥민은 벤치에서 대기했지만 끝내 결장했다. 손흥민은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감독님과 상의하에 출전하지 않기로 했지만 너무 아쉬웠다”면서 “많은 부산 팬이 4년 만에 대표팀 경기를 보러 오셨는데 저도 제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전했다.
그는 “아쉽지만 감독님께서 어린 선수들과 새로 합류한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주면서 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처음 발을 맞춰본 선수들도 많았고, 또 개선해야 할 점도 분명히 많았지만 후반에는 좋은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다음 경기에는 좀 더 나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클린스만호는 3월 A매치 2연전(콜롬비아 2-2 무·우루과이 1-2 패)에서 1무 1패를 거둔 가운데 6월 A매치 첫 경기도 패하면서 출범 후 3경기에서 승리 없이 1무 2패를 기록 중이다. 대표팀은 오는 20일 오후 8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6월 A매치 2연전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며 클린스만호 첫 승리에 재도전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