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깎은 권도형…“위조여권? 알았으면 자살행위했겠나”

입력 2023-06-17 05:18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 제공, 연합뉴스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하려다 체포된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현지 법정에서 위조 여권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권 대표는 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조 여권 사건 재판에서 “친구의 추천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에이전시를 통해 모든 서류를 작성한 뒤 코스타리카 여권을 받았다”며 “벨기에 여권은 다른 에이전시를 통해서 받았다”고 밝혔다.

삭발에 가깝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그는 “해당 에이전시를 통해 그라나다 여권을 신청할 때는 거절당했고, 코스타리카 여권을 신청할 때는 신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며 “또한 신뢰할만한 친구가 추천해준 에이전시였기에 에이전시를 신뢰했다”고 말했다.

앞서 권 대표는 한씨와 함께 지난 3월 23일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갖고 UAE 두바이행 전세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돼 공문서위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권 대표는 “코스타리카 여권으로 전 세계를 여행했다. 만약 위조 여권이라고 의심했으면 여러 나라를 여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몬테네그로 국경을 통과했을 때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여권의 진위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은 ‘경제 여권’을 받을 수 있다면서 아랍에미리트(UAE), 포르투갈 등에 그런 제도가 있으며 몬테네그로에서도 25만 유로(약 3억5000만원)만 내면 수개월 뒤에 여권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런 일을 맡아서 하는 에이전시가 전 세계적으로 여러 곳 존재한다며 여권이 위조됐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전세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만약 코스타리카 여권이 위조 여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걸 가지고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출국하려고 했겠는가”라며 반문한 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항변했다. 해당 에이전시의 명칭을 묻는 판사의 말에는 “중국말로 돼 있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법정으로 끌려가는 권도형. AFP연합뉴스

권 대표가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출국을 시도할 당시 제출한 코스타리카 여권에는 실명과 진짜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지만 그가 소지한 또 다른 여권인 벨기에 여권은 가명과 가짜 생년월일이 기재돼 있었다.

이에 관한 판사의 질문에 권 대표는 “에이전시에 문의해보니 벨기에 당국의 실수 때문에 잘못 기재된 것이라고 들었다”며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다 싶어서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벨기에 여권은 안 사용하고 코스타리카 여권만 사용했다”고 답했다.

권 대표의 새 법률 대리인은 “의뢰인들과 대화해보니 적법한 여권이라고 믿었고, 위조 여권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인텔리전트한(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부적합하게 일을 처리했겠느냐”고 변호했다.

권 대표는 함께 붙잡힌 측근 한모씨에 대한 선처도 호소했다. 권 대표는 “그는 죄가 없다”며 “위조 여권으로 처벌을 받게 되면 나만 받게 해달라”고 했다. 한씨 역시 “나는 권씨를 철저히 믿었고, 에이전시가 적법하게 처리할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다만 이들은 재판이 더 이상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코스타리카·벨기에 여권에 대한 재조사 신청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검사는 “적법한 기관에서 발행된 여권이 아니다”라며 “벨기에 여권은 이름도 다르고 생년월일도 다르다. 나쁜 의도로 여권을 만든 게 분명하다. 적법하게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판결은 오는 19일 오후 2시 내려질 예정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