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인간이 삶을 시작하면서 마주하는 첫 번째 세계다. 미성숙함이 성숙으로 영글어가는 과정 가운데 인간은 가정 안에서 정립된 세계관으로 세상과 사회를 바라본다. 정립된 세계관이 무엇에 바탕을 두는지에 따라 인생길의 경로가 바뀌고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물꼬를 트기도 한다.
지난 10일 경기도 가평에서 만난 한 가정에게서 세계관이 하나의 울타리로 견고하게 형성돼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울타리 안에는 상실과 위기, 아픔들이 혼재돼 있었다. 하지만 고난의 흔적을 덮고도 남을 만큼 한껏 온기를 머금은 마음이 가정을 지켜내고 있었다. 사랑이란 이름의 울타리였다.
한 남자와 한 여자
한 여자는 교회 언니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첫 만남의 자리에서 내리 3시간 동안 자신의 꿈을 얘기했다. 마치 요셉처럼. 회사원이었던 남자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설립한 기독교 청년봉사단체를 10년째 이끌고 있었다. 그의 꿈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무료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여자는 결단했다. 곁에 머물기만 해도 선한 영향을 받을 것 같은 이 남자와 부부의 연을 맺기로.
신앙이 뿌리내린 가정에선 만 9년 동안 딸 4명의 결실이 맺혔다. 하지만 이후 20년간 그 과실이 익어가는 모습을 나무 아래서 지켜보는 건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20년 전 남자를 천국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기적같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했다. 장주연(54·서울광염교회) 권사와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성공 신화를 쓴 고(故) 고창용 집사 이야기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른 아홉, 젊은 가장에게 찾아온 선고
장 권사에게 2002년은 충격의 소용돌이 같은 시간이었다. 넷째 아이 임신 소식을 듣고 축복을 나눌 겨를도 없이 한 달 만에 남편의 시한부 판정을 맞닥뜨려야 했다.
“셋째 딸을 업고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뇌에 두 개의 종양이 있는데 위치도 크기도 좋지 않다고. 남은 시간은 11개월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요.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서른 아홉의 젊은 가장에게 찾아온 절망적인 선고였다. 하지만 아내이자 엄마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임신한 몸으로 세 딸을 챙기며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나섰다. 장 권사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겨웠을 때, 기도의 동아줄을 붙들며 간구하는 동안 새 가족들이 둥지를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새 가족은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 성도들과 고 집사가 재직하던 이랜드(회장 박성수)의 직원들이었다. 교회에선 고 집사의 쾌유를 함께 기도하는 365일 철야기도팀이 구성됐고 홈페이지에 마련된 게시판엔 고 집사의 투병 소식과 기도 제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회사 직원들은 보험 든 게 없어 의료비 걱정이 크다는 얘길 듣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았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할 땐 순번을 짜 집과 병원 오가는 차량의 운전대를 잡았다. 신앙이 없어 금식기도가 뭔지도 모르던 직원들이 방법을 물어가며 고 집사를 응원하기도 했다. 과거 근육무력증을 앓고 2년여간 투병 생활을 했던 박성수 회장도 병실을 방문해 희망을 불어넣어 줬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한 가정의 일원이 된 듯 움직이게 한 건 고 집사가 보여 준 삶의 태도였다. 그의 삶은 긍휼과 사랑, 헌신으로 축약된다. 대학시절 봉사단체를 이끌 땐 고아원 아이들에게 오빠, 형이 돼줬고 홀몸 노인들의 팔순잔치를 기획하는가 하면 연고 없는 어르신들의 장례식에서 직접 염(殮)을 하기도 했다.
교회와 회사에선 ‘셔터맨’으로 불렸다. 누구보다 먼저 나서 궂은일을 도맡았고 모든 일에 마지막까지 임한 뒤 셔터를 내리는 사람이었다. 푸마 브랜드의 본부장을 맡기 전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했을 땐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인격적인 태도로 귀감을 샀다. 그가 생전 남긴 노트의 첫 줄엔 ‘사람과 문제를 구분해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를 기억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고 집사는 분주한 업무 가운데서도 늘 가정을 걱정하는 아버지였고, 한국 시장에서조차 미미한 점유율을 보였던 브랜드에 글로벌 1위 나이키 못지않은 도전정신을 심어줬던 선각자였다.
천국 가는 길에 남겨 준 DNA
2003년 2월. 첫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뒀던 여섯 식구의 가장은 수의 대신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었던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신은 채 천국으로 향했다. 가장의 부재가 낳은 그림자가 옅을 리 없었다. 하지만 투병 기간 사랑의 울타리가 돼줬던 이들은 고 집사의 빈자리를 채우며 곁에 섰다. 이랜드에선 고 집사를 명예사원으로 위촉하고 20년 넘게 경제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교회 내 여성 사별자 모임인 샬롬회는 장 권사의 영적 언덕이 돼줬다.
이날 이랜드 그룹 리더 수련회에서 가족이 돼준 이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장 권사 가정엔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의 삶을 나누는 대화가 쌓이는 동안 고 집사가 생전 보여줬던 사랑과 섬김의 DNA가 네 딸의 이름에 오롯이 투영돼 그려졌다.
은혜를 입은 왕비(에스더)가 되길 바랐던 은비(28)씨는 유년 시절 받았던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가슴에 새기며 영국에서 평화학을 공부한 뒤 아동 인권 전문가로서의 꿈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이준건(32·서울광염교회) 전도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다음세대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신앙 교육과 아동 인권을 함께 공부하며 동역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둘째 은송(26)씨는 학창 시절부터 이어온 발레, 뮤지컬 경력을 바탕으로 안무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데 달란트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엔 퍼포먼스 합창 경연 프로그램 싱포골드에 출연한 떼루아유스콰이어의 안무 감독을 맡으며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은송씨는 “워십의 예술성을 녹인 세계 최고의 안무가가 되고 싶다”며 “앞으로 다양한 크리스천 예술가와 함께 크리스천 종합 예술 아카데미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은혜의 강물에 젖어 살기를 바랐던 은수(23)씨는 학창 시절 젖어 있던 깊은 슬픔을 털어내고 드레스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하나에 몰입하면 밤새도록 집중력을 놓치 않는 열정이 아버지께 물려 받은 최고의 DNA”라며 웃었다.
막내 은지(21)씨는 하나님 은혜를 잘 아는 공학도로 살고 있다. 한동대(총장 최도성) 기계제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개발시키는 일이 최대 관심사다. 그는 “지난 겨울 케냐에 다녀온 뒤 그곳 학생들이 현지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온라인 회의를 열고 도와왔다”며 “올 여름에는 우간다 쿠미대학에 수업조교로 방문해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집사의 가슴에 새겨진 사랑과 섬김의 DNA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장 권사는 자신처럼 남편을 잃고 자녀를 양육하는 성도들과의 소모임에서 리더를 맡으며 신앙으로 회복을 돕고 있다.
20여년 만에 6인 가족 체제를 이룬 이들은 매일 오후 11시 얼굴을 맞대고 예배하며 삶을 교제한다. 거주지는 다르지만 화상회의 프로그램(Zoom)이 한 지붕을 만들어 준다. 찬양과 감사 나눔, 신앙적 메시지, 기독 제목 공유로 이어지는 작은 가족 모임이지만 저마다 역할을 맡고 나름의 체계적인 시간을 준비한다.
이별 후 20년, 고 집사가 머물고 있을 천국을 향해 띄운 편지에는 남편과 네 딸이 전하는 진하고도 먹먹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사랑하는 여보,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지? 당신이 천국 간 지 20년이 지났어. 당신이 떠나던 날 당신에게 한 말처럼 예수님이 함께하셔서 아이들이 잘 자랐어. 내가 맡겨진 사명 다하고 당신에게 갈 수 있게 천국에서 우리 가정 위해 기도해줘. 사랑해 여보.”(아내 주연)
“아빠를 닮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사는 자랑스러운 첫째 딸이 될게요. 천국에서 웃으며 만나요. 사랑해요.”(은비)
“꿈과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다양한 예술로 힘을 불어넣어 줄 거예요. 아빠 천국에서 봐요.”(은송)
“아빠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빠가 남기고 간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들만큼은 선명하네요. 다시 만나 뵐 때까지 안녕.”(은수)
“아빠가 항상 관심 가졌던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다 갈게요. 감사해요.”(은지)
장 권사가 남편의 뇌종양 판정을 접한 뒤 천국으로의 이별을 고하기까지 333일간의 투병일기를 엮은 책의 제목은 ‘상실은 있어도 상처는 없다’(2004, 생명의말씀사)이다. 그는 “20년 시간을 지나오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었기에 상처와 두려움이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장 권사가 어둠 속 절망에서 꺾이고 넘어질 때마다 붙들었다는 성경 구절이 그의 미소 옆에 거울처럼 비쳤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가평=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