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숍을 운영하는 A씨(27)는 지난 5월 19일 마케팅 담당자라고 밝힌 이로부터 인스타그램 메시지(Direct Message)를 받았다. 협찬받은 제품의 후기를 쓰면 A씨에게 원고료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본사 공식 인스타그램이라며 알려준 계정에는 포털 스마트스토어 주소도 적혀 있었다.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요청받은 대로 이름과 전화번호, 카카오톡(카톡) 비밀번호, 주소, 계좌번호 등을 전달했다.
그러나 협찬은 고사하고 60일 동안 A씨의 카카오톡 전체 서비스 이용이 정지당했다. A씨에게 연락해온 계정은 실제로 존재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정보를 도용해 만든 위장 계정이었다. A씨는 “내 계정이 영리 목적의 광고 계정으로 쓰이면서 여러 사람에게 신고당했다는 설명을 카카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카톡 이용을 못 하게 되면서 A씨는 본인 가게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톡으로 고객 예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미용 전·후 관리, 안내사항 및 다음 예약일, 할인 행사 안내 등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평소 인스타그램에 반려견 사진을 올리던 대학생 B씨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 그는 지난 5월 반려동물용 욕조를 협찬하겠다는 DM을 받고 개인 정보를 알려줬다. 그 역시 카톡 로그인이 막힌 후에야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지인들한테 내 이름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이상한 메시지를 보낼까 봐 걱정됐다”며 “혹시 그런 메시지가 오면 무시해달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고 말했다.
A씨나 B씨처럼 협찬을 해주겠다는 말에 선뜻 개인 정보를 제공했다가 카카오 계정을 해킹당하는 ‘협찬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잇따라 올라오는 피해 사례를 보면, 사기범들이 협찬하겠다며 접근한 물품은 육아용품부터 화장품 냉장고, 무드등, 가정용 빔프로젝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피드를 보면 관심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특성을 이용해 사기범들은 각 계정 주인들의 관심사에 맞춰 접근하고 있었다. 가령 평소 아기의 사진을 자주 올리는 사람에게는 육아용품을, 반려동물의 사진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애완견용 미니 욕조를 협찬해 주겠다는 식이다.
인스타그램은 특히 검색어를 설정하는 해시태그 기능을 통해 비슷한 주제로 올린 게시물을 한눈에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상대방의 연락처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DM을 보낼 수 있어 범죄 대상을 찾아 연락하기가 쉽다.
반면 피해자로서는 사기를 당한 뒤에도 특별한 조치를 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사기범 측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모두 확보한 반면, 피해자 측에서는 사기범의 인스타그램 계정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기범이 인스타그램에서 피해자의 계정을 차단해버리면 피해자가 접촉할 방법은 전혀 없다. 메시지(DM)를 보내도 사기범의 계정에 전달되지 않고, 사기범이 올린 게시물조차 확인할 수 없다. 사기범이 인스타그램 계정 자체를 삭제하면 상대방을 다시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남재성 한라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6일 “카톡 계정이 공유된 이후 업체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삭제되거나 외국 계정으로 바뀌는 탓에 사기의 출처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피해자는 카톡 고객센터를 이용해 계정 정지·이동을 신청하는 방법 외에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해자 A씨는 카카오 측으로부터 ‘누군가에게 카카오 계정 정보를 알려준 적이 있다면 이는 카카오 계정 거래·양도·교환에 해당해 이용약관 및 운영 정책상 금지된 행위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기범을 가려낼 방법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실제 운영 중인 공식 인터넷 쇼핑몰 정보를 도용해 가짜 홍보 계정을 운영하는 식으로 피해자들이 계정을 믿게 만든다. 실제 존재하는 회사 이름을 아이디에 버젓이 쓰고, 아이디 맨 뒤에 ‘공식적인’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official’을 붙여 공식 계정처럼 둔갑시키는 게 대표적이다.
계정 소개란에 포털 스마트스토어 링크를 적어두고, 실제로 거기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을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이런 이유로 사기범을 믿고 정보를 알려줬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인스타그램 협찬 사기가 피해자를 양산하기 쉬운 구조라고 우려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들을 현혹할 수 있는 새로운 사기 수법”이라고 진단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학과 교수도 “(개인 정보를 알려줬을 때) 별도의 비용은 내지 않으면서 부수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경각심을 낮춰 이런 범죄에 걸려들기 쉽다”고 지적했다.
결국 개별 사용자가 평소 경각심을 갖고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사기든 아니든 간에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계정 정보만 보고 믿지 말고, 직접 업체에 전화를 해보는 등의 교차확인도 필요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협찬 연락을 받았을 경우 실제 업체에 연락해 보고 주변 지인이나 전문가를 통해 이중·삼중으로 확인하고 점검하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정 사칭을 당한 업체 중 일부는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문을 올리는 등 추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피해업체는 포털 스마트스토어 공식 홈페이지와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해당 업체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SNS로 제품 홍보 및 협찬 의뢰를 일절 하지 않는다”며 사기범의 접근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게시물을 올렸다.
최종술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칭 피해를 본 쇼핑몰이 이런 식으로 안내하는 게 추가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단순히 피싱을 조심하라거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말라는 식의 방법은 대안이 못 되는 것 같다”면서 “경찰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 등을 운영하는 사업자들도 책임 의식을 가지고 예방 노력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지윤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