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반대했을 뿐인데… 러시아인, 수감 한 달만에 숨져

입력 2023-06-16 11:46
지난 2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코플리 광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전 시위의 한 참석자가 '승리 후 평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침공’으로 규정하며 반전 시위를 벌여왔던 러시아인이 수감 생활 한 달 만에 사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활동가는 반전 메시지로 활용되는 ‘나는 살고 싶다’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도시 곳곳에 붙였다가 당국의 표적이 됐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인 활동가 아나톨리 베레지코프(40)의 변호인 이리나 가크는 전날 러시아 인권감시단체 ‘OVD-Info’를 통해 공개한 영상에서 의뢰인의 사망 사실을 알렸다. 그는 “베레지코프의 시신이 석방예정일을 불과 하루 앞둔 14일 영안실로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경찰은 지난달 남부 로스토프주의 주도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자택에서 베레지코프를 경범죄 혐의로 체포했다. 베레지코프는 이후 인근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한 혐의로 수감된 러시아인 중 처음으로 사망한 인물로 보인다는 게 뉴욕타임스(NYT)의 설명이다. NYT는 베레지코프가 수감 기간 고문과 폭행, 협박에 시달린 정황이 있다고 했다.

다만 로스토프나도누 경찰은 현지 언론매체를 통해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경찰 측은 “수감 중이던 베레지코프가 전날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내에서는 현지 경찰의 고문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가크 변호사는 “베레지코프가 사망하기 전 협박받고 있고 목숨을 잃을까 두렵다고 호소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숨지기 하루 전에는 늑골이 부러졌다면서 몸에 난 상처를 보여줬다”고 했다. 러시아 야권 활동가인 타탸나 스포리셰바도 며칠 전 법정에서 만난 베레지코프가 위협과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털어놓으며 “그들이 나를 죽일까 봐 무섭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OVD-info가 집계한 통계를 보면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시된 작년 2월 이후 2만명 가까운 시민이 반전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됐다. 대다수는 곧 석방됐으나 600명가량은 기소돼 재판에 회부된 상황이다. OVD-info 소속 변호사 다샤 코롤렌코는 기소된 시민 중 37명이 고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