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배합해 ‘인간 배아’ 제조… 생명윤리 비판도

입력 2023-06-15 19:45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공으로 합성했다고 발표한 인간 배아의 모습. 연구팀은 14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연례회의에서 이를 발표했다. 케임브리지대 제르니카-괴츠 교수 연구팀 홈페이지

미국과 영국 연구진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합성 인간 배아를 만드는 실험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난자와 정자를 수정하는 과정 없이 줄기세포 배합만으로 인간 발달의 초기 단계와 유사한 배아를 생성했다는 설명이다. 선천적 유전 질환과 유산, 난임 등의 치료를 위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만 법적·윤리적 합의가 배제된 성공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 실험 결과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교수 연구진이 14일(현지시간) 미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연례 회의에서 발표한 것으로 영국 일간 가디언이 인용해 보도했다.

이번에 생성한 배아 모델은 뇌와 심장 등 기본적인 신체 장기가 생겨나기 직전인 ‘배엽형성(Gastrulation)’ 단계다. 보통 배아기 2주 차쯤 나타나는 현상이다. 난자와 정자의 전구세포(완전한 형태를 갖추기 전 단계 세포)인 원시 세포가 관찰된다.

연구진은 이 모델이 자연적으로 착상한 배아의 14일에 해당하는 발달 단계를 약간 넘어서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기간은 태아 발달 과정의 ‘블랙박스’로 여겨진다. 현대 과학이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실험에 사용된 배아줄기세포는 불임클리닉 환자에게서 기증받은 것이다.

제르니카-괴츠 교수는 연구 목적이 생명 창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는 배아가 수정과 착상 후 때때로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해 이로 인한 손실을 차단하고자 한다”며 “임신이 왜 실패하는지를 발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한 로저 스터메이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원도 “이 단계는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수정란 착상에 가장 많이 실패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합성 배아가 단기간 안에 임상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다. 발달 초기 단계를 넘어설 잠재력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 이론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적인 벽도 존재한다. 연구실에서 배아를 배양할 수 있는 기한은 최대 14일까지다. 이후에는 기증된 배아를 연구해야 하거나 임신부 검사 촬영본을 관찰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 국가는 줄기세포로 제작한 인공 배아의 자궁 이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의 발달 속도가 법 제도와 생명 윤리 논의를 앞지른 단적인 사례다. 가디언은 “이 연구는 영국은 물론 다른 대부분 국가에서도 현행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아 심각한 법적·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인 홍순철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인공 배아는 원하는 줄기세포를 뽑아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성을 띤 일종의 왜곡된 생명체로 볼 수 있다”며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연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