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설 딛고 꼿꼿이 무대 누비는 배우 임동진 목사

입력 2023-06-15 17:25 수정 2023-06-16 13:20
임동진 목사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신앙인으로서 연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60년 가까이 중저음의 음색으로 선 굵은 연기를 펼쳐온 배우 출신 임동진(79) 목사. 임 목사는 최근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화기 건너편의 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진짜 (임) 목사님이 맞으시냐. 우황청심환을 먹고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온라인상에 임 목사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막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가짜뉴스였다.

“제 장례식장이 몇 호실이라고 하더라는 얘기까지 들으며, 정말이지 요즘은 사람들이 거짓으로 포장된 것에 속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는구나 싶었어요.”

팔순을 앞두고 퍼진 사망설에 20여년 전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과거를 알기에 그의 건강 상태가 궁금했다. 하지만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만난 임 목사는 사망설이 무색할 만큼 건강해 보였다. 내년 ‘보훈의 달’ 개막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는 국민악극 ‘가거라 38선’을 설명할 땐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를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을 묻는 말에는 여느 젊은 배우 못지않은 열정과 소신이 묻어난 대답이 돌아왔다.

“2001년 쓰러졌을 당시 의사로부터 소생 불가 판정을 받았어요. 평생 휠체어 신세로 살 수도 있단 생각에 매일같이 울며 소리치며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도 했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제게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김준곤 목사님이 제게 해주신 말씀을 떠올리게 해주셨어요. 매일 ‘레디고 액션’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좋겠다며 건네주셨던 김 목사님의 말을 떠올리며 재활에 매진했죠. 그렇게 23일 만에 병원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임 목사가 2016년 공연한 연극 '그리워 그리워'의 한 장면. 국민일보DB

그 길로 맡은 작품이 드라마 ‘피아노’다. 임 목사는 당시 조직 두목이었지만, 출소한 뒤 크리스천 아내의 노력으로 개과천선한 인물을 맡았다. 병상을 털고 일어선 뒤 임 목사의 삶도, 신앙관도 배역처럼 바뀌었다. 장로로 오랫동안 헌신하다 2006년 루터대학교 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임 목사는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기로 한 이후 신학교를 다닐 때도 목사 역할을 맡았다는 자세로 성경의 본질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을 뿐, 소위 ‘대단한’ 성경 지식을 전하는 목회자가 될 자신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먼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던 아들 임영희(55) 목사는 당시 “꼴등을 하시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그 혜택을 누리시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지각과 결석 한번 없이 신학대를 마쳤다. 이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열린문교회를 담임하며 9년간 온전히 ‘목회 강단’을 지켰다.

“배우가 교회를 세웠다고 하니 구경 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교인 가정과 식사를 하게 됐어요. 그 가정의 남편분께서 제게 ‘목사님 설교가 연기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큰 충격을 받은 전 그분께 ‘집사님은 우리 교회가 맞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응수했죠. 안 그래도 연기자처럼 설교한다는 얘기를 들을까 늘 조심스럽던 차여서 저도 모르게 인성에 끌려 그분께 상처를 준 것이죠. 그 후로 그 집사님이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고요. 늘 마음에 걸린 전 직접 그분을 다시 직접 찾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며 사과했습니다.”
임 목사(가운데)가 개과천선한 조직 두목으로 출연한 2001년 SBS 드라마 '피아노'의 한 장면. 드라마 영상 캡처

임 목사는 2014년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원로목사’ 직함도 사양한 채 아예 이 교회를 떠났다. 이후에는 여러 교회의 초청을 받아 간증과 설교를 전하며 강단에도 종종 올랐다. 본향과도 같았던 무대로도 다시 돌아갔다.

“한 번은 의사이신 지인 장로님이 절 진찰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사님, 하나님이 수고 많이 하고 계십니다’라고요. 참 은혜로운 진단이더라고요. 현대의학도 가망 없다고 한 저를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전 압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매일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허물과 온갖 죄로 난무한 삶을 살아온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직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기에, 하나님의 사람이란 걸 알기에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무대에 오릅니다.”

극단 예맥을 오랫동안 이끌어왔던 임 목사는 “삶을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무대 위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깨우침을 얻는 공연, 다음세대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공연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여생 동안 기독교 가치관이 담긴 영화 연출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는 등 여전히 무대를 갈망하는 그의 모습에서 뼛속까지 배우이자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 느껴졌다.

“제가 죽었다는 가짜뉴스에 속은 수많은 지인이 울며 전화를 걸어오는 것을 보며 정말 내가 주님 안에서 잘 살았구나, 또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과거에는 기독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에 헌신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면 요즘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제 연기가 하나의 ‘하나님을 향한 제사다’라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제 몸과 마음을 모두 드리는 예배자의 모습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겁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