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신창동 ‘마한 유적지’가 훼손될 위기를 맞고 있다. 유물을 발굴하고 원형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역사적 유산이 아스팔트에 깔려 묻히거나 파괴될 처지다.
15일 광주시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가지정 문화재(사적 365호)인 마한 유적지 일부가 올 하반기 착공되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광산IC 확장공사로 장기간 파헤쳐지게 됐다.
교통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나들목(IC) 2곳을 잇는 11.2㎞의 고속도로를 왕복 4차선에서 6~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다. 오는 2028년 완공 예정이다.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한 이 공사에는 당초 4031억원에서 3041억원 늘어난 7072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문제는 확장공사에 신창동 마한 유적지 1.85㎞ 구간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선사시대 유적지인데도 중장비를 동원해 기존 25.9m 4차선이던 도로 폭을 35.6m 6차선으로 넓히는 공사 과정에서 지하의 유물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2020년부터 3차례 심의를 부결·보류한 문화재청은 건설교통부의 거듭된 확장공사 심의 요청에 유적지 경관 회복 터널 확보, 유적지 동쪽 방향 확장 등을 내걸고 ‘조건부 가결’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고대 연맹 국가 마한의 유물이 대거 출토된 신창동 마한 유적지가 함부로 망가지는 것을 더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지역 역사학계는 기존 고속도로와 광주~장성 간 국도가 관통하면서 심각하게 훼손된 신창동 유적지를 내버려 두는 것도 안타까운데 앞으로 더 파헤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계 관계자들은 “예산이 들더라도 우회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는 데 건설교통부와 광주시는 고조선 이후 한강 이남 지역의 뿌리인 마한사에 재를 뿌리는 셈“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그동안 마한 역사 부활을 외쳐온 광주시가 강 건너 불 보듯 팔짱만 끼고 있다는 여론도 적잖다.
임영진 마한연구원장은 “신창동 유적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됐지만 더 방치하거나 깨뜨려서는 안된다”며 “유적지를 우회해 공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시는 지난해 12월 신창동 사적지정 30주년을 기념한 ‘마한유적체험학습관’을 개관하는 등 마한 역사 정립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유적지의 근본적 훼손을 막는 데는 소홀하다.
세계 최대 벼 생산 유적지로 꼽히는 신창동 마한 복합 유적지에서는 영산강변 농경문화를 꽃피운 엄청난 양의 유물이 여전히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한은 진한, 변한과 더불어 고조선을 이은 국가 형태 중 하나다. 54개의 부족 국가를 이룬 삼한의 성립·형성·발전 과정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신창동 26만여㎡의 마한 유적지는 1963년 서울대박물관이 청동기~초기 철기 옹관묘 군을 처음 발굴 조사했다. 이어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 조사에서 국내 최대 벼 껍질 퇴적층과 각종 농기, 칠기, 악기와 함께 바큇살·차축 등 수레 부속구, 제사 도구 등이 집중적으로 발굴됐다.
이에 따라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한강 이남의 소국 연맹체로 독자적 문화를 유지한 마한의 대표적 유적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마한 역사는 국내 문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데다 고고학 자료 역시 드물어 학술적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신창동 유적 발굴과 보존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동안 2만여 점의 각종 유적이 발굴된 신창동 마한 유적지는 26회에 걸쳐 총면적 대비 30%에서만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이로 인해 국가적 차원의 추가 발굴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와 관련, 유적지 훼손을 막기 위한 우회도로가 전남에서 추진돼 시선을 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광주~강진 간 고속도로 중 나주 공사구간에서 발견된 ‘고대 무덤’을 보존하기 위해 고속도로 선형을 최장 2.3㎞ 변경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역 역사학계 관계자는 “신창동 유적지에 대한 지자체 등의 무관심이 도를 넘고 있다”며 “마한 역사는 지역의 뿌리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