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에게 회사를 승계하기 위해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호반건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6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다만 공소시효가 지나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개인에 대한 검찰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15일 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동일인인 김 회장의 자녀들이 소유한 호반건설주택, 호반산업 등을 부당하게 지원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 호반건설주택은 김 회장의 장남인 김대헌 사장이, 호반산업은 차남인 김민성 전무가 보유한 회사다.
공정위는 2010년 1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있었던 공공택지 양도 행위에 주목했다. 당시 공공택지는 추첨 방식으로 공급됐는데, 호반건설은 이를 악용해 페이퍼 컴퍼니에 가까운 계열사를 설립해 입찰에 참여시키는 등 ‘벌떼 입찰’을 통해 다수 공공택지를 확보했다. 다수 행위가 이뤄진 2013~2015년은 건설사 간 공공택지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호반건설이 확보한 23개 택지의 평균 경쟁률은 108대 1에 달했다.
힘들게 확보한 택지는 호반건설의 지분이 전혀 없는 동일인 2세 소유의 회사와 그 자회사에 양도됐다. 호반건설은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시행 이익을 전혀 얻을 수 없게 된 셈이다. 공정위는 23개 공공택지 시행 사업에서 발생한 분양이익 1조3587억원이 지원 객체 회사에 귀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호반건설주택이 빠르게 성장해 호반건설의 규모를 넘어서면서 승계 구조가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호반건설주택은 2018년 호반건설이 피합병될 때 1 대 5.89의 높은 비율로 평가받았다. 이후 김 사장이 호반건설 지분을 54.7% 보유하게 되면서 승계가 마무리됐다.
공정위는 이같은 호반건설의 승계 계획이 장기간에 걸쳐 수립·진행된 것으로 판단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김 회장은 2003년 당시 미성년자였던 김 사장을 대리해 김 사장이 지분을 100% 보유한 호반건설주택을 설립했다. 공정위는 당시 내부 보고서에 “김대헌 등 친족이 장차 신설법인(호반건설주택)을 통해 호반건설의 지배권을 획득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같은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행위종료일인 2015년 9월 이후 5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만료돼 김 회장 개인에 대한 검찰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호반건설은 2세 회사의 입찰신청금을 무상으로 대여해주기도 했다. 공공택지 추첨입찰에 참여하려면 수십억원의 입찰신청금을 내야 하는데 2세 보유 회사의 입찰을 위해 호반건설이 총 1조5737억원을 대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통해 호반건설은 최소 5억1981만원의 이자비용을 절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2세 회사 자체 신용으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자 호반건설은 지급보증을 서기도 했다. 호반건설은 40개 공공택지 사업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을 무상으로 지급 보증했다. 공정위는 호반건설이 수취하지 않은 수수료가 최소 152억6262만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공사 중이던 계약을 2세 회사에 넘긴 사례도 적발됐다. 호반건설주택, 호반산업이 종합건설업 면허를 취득해 공사 자격을 갖추자 호반건설은 936억원 규모의 10개 현장을 이관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