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현재 이란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들을 석방하는 대가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 확대를 막기 위해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지널(WSJ)이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양측의 접촉이 재개됨에 따라 최근 미국 당국은 이라크 정부가 이란에서 수입한 전기와 가스에 대한 대금 25억유로(약 3조4590억원)의 지급을 승인했다. 해당 자금은 앞서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로 동결된 상태였다. 다만 미 당국자들은 “이번 자금 이전은 일상적인 것으로, 핵 프로그램 등 논의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WSJ는 이전에도 비슷한 대금 결제가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현지 통화가 아닌 유로로 이뤄졌다고 부연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에서 양국 고위급 논의가 시작됐으며, 이후 백악관 관계자들이 추가 접촉을 위해 최소 3번 오만을 방문했다. 오만 당국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제한을 가하는 국제 핵 협정인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기 위한 협상을 취임 후부터 진행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JCPOA를 파기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란 정부가 히잡 착용을 둘러싼 반정부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이란 정부 인사들을 대거 제재하며 양국 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고,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은 관련 협상이 사실상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처럼 대이란 외교 시도를 재개하는 것은 이란이 러시아에 무인기(드론)를 계속해서 제공하고, 우라늄 농축을 강행하고, 원유 운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파나마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올 들어 고조되는 중동의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란은 한국 우리은행에 동결돼 있는 석유 수출대금 약 70억달러(약 8조9411억원) 등 해외에 발이 묶여있는 에너지 수출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이 문제를 잘 아는 한국의 전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이란과 미국이 인도주의적 목적에 따른 자금 동결 해제를 놓고 논의를 지속 중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비공식적인 형태로 이란과의 합의를 시도하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부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WSJ는 “바이든 행정부는 야당인 공화당이 이란 핵합의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만큼, 이 의제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부상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며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이란과의 핵 협상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만큼 비공식적인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부연했다.
다만 이러한 비공식적 합의조차도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이는 바이든이 협상하겠다고 밝힌 이른바 ‘더 강력하고 더 긴 핵 합의’에서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고 WSJ는 덧붙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3일 “이스라엘 정부는 그러한 거래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