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내림세가 연일 지속되고 있다. 역대급 엔화 환율 하락에 일본을 찾는 관광객도 늘고, 환테크(환율 변동에 따라 차익을 노리는 투자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900원 선’이 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엔저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수출기업과 서비스 수지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교차한다.
14일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10원대를 기록했다. 엔화는 지난 4월 26일 1004.17원까지 ‘반짝 상승’을 보이다가 900원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엔화 환율 약세 이유로는 반도체 업황 등 경기 개선 기대감에 기반한 원화 강세와 일본 중앙은행(BOJ)이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점 등이 꼽힌다. 현재 추세면 2015년 6월 이후 8년 만에 800원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엔화 환율이 약세를 보이자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항공통계에 따르면 이달 1~10일 8만9847명이 국내 항공사의 인천↔나리타(도쿄) 노선을 이용했다. 지난 4월 같은 기간(8만2352명)보다 9.1%, 1월(6만6741명)에 비하면 34.6% 늘었다.
엔화에 투자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외화 가격이 낮을 때 사서 가치가 오를 때 팔면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5월 말 기준 7259억엔(약 6조615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5976억엔(5조4473억원)보다 1283억엔(1조1694억원) 늘었다. 지난해 12월부터 감소세를 보이던 엔화 예금은 4개월 만에 증가 전환했다.
엔저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일본 중앙은행이 완화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하반기 국내 경기가 회복되는 정도에 따라 원화 강세가 완만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이나 시장 불확실성에 따라 원·엔 환율이 다시 올라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외적인 불안 요인이 확산되면, 원화보다는 엔화를 더 안전자산으로 보기 때문에 원·엔 환율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엔저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엔저 장기화는 수출 경쟁국인 국내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위험 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초(超) 엔저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지난해 1~3분기 엔·달러 환율 상승률이 1% 포인트 오를 때마다 수출가격이 0.41% 포인트 떨어졌고, 수출물량은 0.20% 포인트, 수출금액은 0.61% 포인트 각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관광 등 서비스 산업 부문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이미 국내 여행객들은 국내 관광지 물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국내 여행을 기피하고 일본 등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