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77번째 생일 하루 전날인 1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법원에 출석해 무죄를 주장했다. 자신에 대한 기소를 “가장 사악하고 악랄한 권력 남용”이라고 주장하며 선거 캠페인에 활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법원에서 변호인을 통해 자신에게 적용된 37개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고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이 보도했다. 건국 이래 전직 대통령이 연방법원에 출석한 첫 사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사상 처음 지역 검찰에 형사 기소된 전직 대통령 기록도 지니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핵무기 관련 문서와 외국의 핵 능력 등 국방 기밀 31건을 고의로 보유한 혐의로 기소됐다. 연방검찰은 해당 문건 은닉과 허위진술, 사법 방해 7가지 혐의도 별도 적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조너선 굿먼 판사가 기소 절차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판사 발언이 끝나자 트럼프 측 토드 블랑쉬 변호사는 “우리는 확실히 무죄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굿맨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변호인을 통해서만 사건 증인인 월터 나우타와 접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나우타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기소된 측근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기밀문서가 담긴 상자를 숨겼고,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에게 거짓 진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굿맨 판사는 다만 도주 우려가 없다고 석방했고, 이동 제한이나 여권 반납 등의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원 출석을 마치고 인근의 쿠바식당인 베르사유를 찾아 지지자들을 만나는 등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해당 식당은 쿠바계 지역사회 명소로, 플로리다 남부의 핵심 선거구에서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위치한 자신의 골프클럽에서도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며 “이번 기소는 선거 개입 시도”라고 주장했다.
기소인부절차가 진행된 마이애미의 모습은 지난 4월 맨해튼 형사법원 출석 때와 빼닮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35분쯤 자신 소유의 트럼프 내셔널 도랄 마이애미 리조트에서 법원으로 이동하면서 트루스 소셜에 ‘마녀사냥’이라고 적었다. 그는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슬픈 날이다. 미국은 쇠퇴하고 있다” “선거방해” 등의 글도 올렸다.
마이애미 연방법원 주변에 팻말을 든 수백 명의 지지층과 소수의 반대파가 함성을 지르며 엉켜 혼란이 빚어진 모습도 똑같았다. 자신의 옷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욕하는 글귀를 적은 한 남성이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양측이 한때 말다툼을 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우려했던 소요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후 2시쯤 법원에 도착해 지지자들을 향해 차 안에서 손을 흔들었고, 알리나 하바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오늘 우리가 목격한 건 형사사법 제도의 노골적인 무기화”라며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트럼프에게 행해진 일은 모든 시민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으로도 몇 건의 법적 싸움을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 그는 2020년 대선 당시 경합 지역이던 조지아주 선거에서 패하자 이듬해 1월 2일 브래드 래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1만1780표를 찾아내라”고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 사기 공모, 선거 사기 범죄 교사, 선거 방해 등 최소 3건의 조지아주 선거법 혐의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6일 대선 사기 주장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해 연방 의회를 습격하도록 종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모두 기소가 임박한 사건들이다.
WP는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당내 경선이나 전당대회가 열리는 지역의 법정 피고석에 앉아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