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권 영등포구청장 “문래동 부지는 구민 위한 시설 돼야” [인터뷰]

입력 2023-06-13 13:47 수정 2023-06-13 14:19
최호권 영등포구청장. 영등포구 제공

서울 영등포구는 최근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가 문래동에서 여의도공원으로 변경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영등포구의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단식 농성까지 하면서 격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일부 주민들의 반대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단호했다. 구유지에 서울시를 위한 문화시설을 만들 수는 없다는 취지였다. 법적으로도 현재 부지에 지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구청장은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종문화회관에 시민들이 공연을 보러 가려면 돈 주고 표를 사야 하고 대관도 따로 해야 한다”며 “영등포구 땅에, 구민들에게 전혀 혜택이 없는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였던 문래동 부지의 가림막이 설치되어있던 모습(윗쪽)과 가림막을 치운 모습. 최호권 구청장은 "가림막이 답답하게 있었다"며 "가림막을 치우니 장미 꽃길이 생겼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제공

최 구청장은 이 때문에 문래동 부지엔 구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문화시설이 건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등포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서울시 내 유일한 법적 문화도시다. 하지만 영등포구 자체 문화시설은 지은 지 50년 넘은 영등포문화원과 영등포구의회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영등포아트홀뿐이다. 그는 “만약 이 땅을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로 내어주고 영등포구만의 문화 공간을 지을 부지를 새로 매입하려면 수천억원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영등포만의 예술의 전당을 지을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적으로도 제2세종문화회관을 문래동 부지에 짓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애초 제2세종문화회관은 영등포구가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서울시가 건립·운영을 맡기로 했는데 공유재산법상 무상 사용은 5년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5년마다 재심사가 필요하다.

그는 문래동 부지에 제2세종문화회관 못지않은 규모 있는 구립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통해 문래동 주민들이 집 앞에서 문화를 편히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한 과거 가림막에 둘러싸여 있던 부지에 정원이나 황토길 등을 임시로 조성해 시설 건립에 들어가기 전까지 구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최 구청장은 “구립 복합문화시설이 완공되면 지역 예술인들이나 문래예술창작촌 작가들도 이를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또한 문화시설은 부지의 3분의 2 정도만 활용해 짓고 나머지 공간은 임시 개방 공간과 비슷한 성격의 야외조각공원으로 만들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였던 문래동 공공공지에 들어설 주민친화공간 조감도. 영등포구 제공

최 구청장은 과거 뿌리산업 중심지였던 문래동 준공업지역에 대한 지원에도 관심이 많다. 문래동1~4가 지역에는 현재도 기계금속 산업 관련 1200여개의 공장이 모여있다. 최 구청장은 “과거 서울 내 대표적인 공단으로 구로공단과 문래공단이 꼽혔다”며 “하지만 지금 구로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가 됐고 문래공단은 여전히 그때 모습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우선 단기적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협력해 이 지역을 초정밀 고부가가치 산업 지역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협력해 문래동 일대 공장들을 서울시 경계 지역 또는 수도권 외곽 산업단지으로 이전을 추진한다. 실제 구는 지난 8일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이전 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도 착수했다. 추후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이적지에는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 관련 기업들을 유치해 개발할 계획이다.

지난달 31일 문래동 공장 이전 타당성 착수 용역 보고회에 참석한 최호권 영등포구청장. 영등포구 제공

현재 영등포구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재개발·재건축 속도가 느린 편이다.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 비중(30%)이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 1위다. 구는 정비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도 내놓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전담 부서를 통합 운영하고 신길5동 주민센터에 ‘찾아가는 재개발·재건축 상담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는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도 지원할 예정이다. 최 구청장은 “늦은 만큼 더 많이 고민해 영등포형 재개발·재건축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최 구청장은 인터뷰를 끝내며 지방자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제2세종문화회관과 관련된 논란도, 문래공단의 쇠퇴도 결국 생활 밀착 정치가 아닌 중앙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그는 “구로디지털단지가 생긴 구로구는 구청장에 서울시 공무원 출신들이 많았다”며 “영등포구는 대부분 정치인 출신 구청장을 선택했다. 약은 약사가 제조하듯 행정도 전문가가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