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열대우림 한복판에서 40일간 세 동생을 지켜낸 맏누이 레슬리 무쿠투이(13)는 구조대원이 다가가자 갓돌을 넘긴 막내를 끌어안고 달려갔다.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어머니를 잃는 비극을 맞이했지만 살아남은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슬퍼할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이 둘러싼 순간까지 막내를 품에서 놓지 않고 동생의 어깨를 다독이던 그는 바짝 긴장한 듯 굳은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콜롬비아의 어린 4남매가 경비행기 추락사고 이후 40일간의 행방불명 끝에 구조되는 장면은 11일(현지시간) 콜롬비아 국영방송 RTVC가 트위터에 게시한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영상을 보면 아이들은 구조 당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다소 쇠약해져 있는 모습이지만 문제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모습이다.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레슬리는 아직 경계심이 남아 있는 듯 웃음기 없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동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가 입고 있는 바지는 가시 등 날카로운 물체에 베인 듯 찢어지고 구멍이 나 있다.
구조대원들은 물을 먹이고 담요를 입히는 등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아이들을 건강 상태를 살폈다. 구조대원이 다가가 말을 건네며 다독이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들것에 드러눕는 소년의 모습도 보인다.
4남매와 조종사까지 모두 7명이 탄 경비행기는 지난달 1일 콜롬비아 산호세델과비아레로 향하던 중 카케타주 솔라노 마을 인근에서 추락했다. 아이들의 어머니를 포함한 성인 2명과 조종사는 숨진 채 발견됐다. 추락 지점에서 레슬리와 그의 9세, 4세, 생후 11개월 동생까지 4남매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아용 젖병과 먹다 남은 과일 조각 등 생존 신호가 발견됐고 콜롬비아 군 당국은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인 끝에 지난 9일 기적적으로 구조했다.
구조대원인 니콜라스 오르도네스 고메스는 “레슬리가 막내를 품에 안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내게 ‘배가 고파요’라고 말했다”고 구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두 소년 중 한 명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 소년은 얼마 뒤 일어나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즉시 긍정적인 말을 했다. 너희들의 친구이며 가족, 아버지, 삼촌이 보낸 사람들이라고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빵과 소시지가 먹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레슬리는 비행기 잔해를 뒤져 동생들에게 줄 먹거리를 확보했다고 한다. 타피오카 전분의 원료로 사용되는 파리냐(카사바 가루의 현지 이름)와 과일, 씨앗 등을 먹으며 연명했다. 남매 모두 원주민인 후이토토족으로 레슬리는 평소 열대우림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평소에도 강인한 성격으로 숲에서 따온 과일을 동생들에게 주며 돌봤다고 한다.
아이들은 현재 수도 보고타의 군사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다. 4남매가 구조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은 트위터에 게시된 지 12시간 만에 조회수 32만회를 기록했다.
콜롬비아 누리꾼들은 남매의 극적인 생환에 환호하면서도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아픔에 함께 슬퍼했다. 이들은 “레슬리의 용기를 칭찬한다” “어린 소녀는 그 순간 누구보다 강한 전사였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도 기적이 있기를” “행복하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