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를 빼돌려 중국에 이른바 ‘복제판 공장’을 지으려던 삼성전자 전직 임원 등 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삼성전자가 이번 기술 유출로 본 피해가 최소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진성)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A씨(65)를 구속 기소했다고 12일 밝혔다. 검찰은 또 A씨가 설립한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B사 직원 5명과 설계도면을 훔친 삼성전자 협력업체 직원 1명 등 6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A씨는 2018년 8월부터 2019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BED(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공간에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와 공정 배치도, 설계도면 등을 부정 취득·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모두 삼성전자가 30년 넘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개발한 기술이다. 특히 BED와 공정 배치도는 ‘30나노 이하급 D램 및 낸드플래시를 제조하는 반도체 공정 관련 기술’로 관련 고시에 따라 ‘국가핵심기술’로 분류된다.
A씨는 삼성전자에서 18년 동안 근무하며 반도체 분야 임원을 역임한 뒤 SK하이닉스로 자리를 옮겨 부사장 등을 지냈다.
A씨는 ‘반도체 제조 분야 권위자’라는 점을 앞세워 2018년 중국 청두시로부터 자본 약 4600억원을 끌어와 중국에 반도체 제조 업체 B사를 세웠다. 또 대만 전자제품 생산 업체 C사 자본(약 8조원)으로 싱가포르에 반도체 업체 D사를 만들었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력 200명에게 ‘고액 연봉’을 약속하며 영입했다.
검찰에 따르면 자본과 인력을 확보한 A씨는 중국 삼성전자 반도체 복제판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공장 부지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불과 1.5㎞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D사 직원들에게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 자료 등을 입수해 활용하라’고 지시했고, 직원들은 범행에 가담했다.
다행히 C사가 A씨에게 약정한 8조원 투자가 불발되면서 공장이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다만 B사는 지난해 연구·개발(R&D)동을 완공해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시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반도체 기술 유출이 아닌,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복제 건설하려 한 시도를 엄단했다”며 “반도체 생산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