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죽이는 항생제가 크론병이나 궤양성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질환’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진단 전 2~5년 사이의 항생제 복용 유무에 따라 발병 위험이 24% 높아졌고 최대 9년 전까지 항생제 복용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의 무분별한 오남용을 경계해야 함을 다시 한번 시사한다.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이창균 교수팀(소화기내과 김효종·오신주 교수)은 항생제 복용과 염증성 장질환의 발병 위험 관계에 대한 연구 논문을 국제학술지 ‘소화기 약리학 및 치료학(AlimentaryPharmacology and Therapeutics)’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이용해 2004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인 염증성 장질환자 6만8633명과 대조군 34만3165명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염증성 장질환을 진단받기 2~5년 전 항생제 복용 유무에 따라 염증성 장질환 발병 위험이 약 24% 증가했다. 또 진단 전 최대 9년 전까지의 항생제 복용 경험이 염증성 장질환 발병 위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항생제 복용량이 증가할수록 발병 위험이 증가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항생제 사용률이 높은 대표적 국가로 손꼽히는 만큼, 항생제 오남용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항생제의 과다 사용이 원인불명 희귀 난치질환인 염증성 장질환을 유발하는 환경적 인자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로 염증성 장질환이 급증하는 아시아 내 최초로 진행된 대규모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으로 대표되는 염증성 장질환은 최근 들어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장에 염증이 생기는 원인불명의 만성 질환으로 복통, 설사, 혈변,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보통 수개월 간 나타난다.
용어만 듣고 장염과 같은 일반 장질환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며 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모든 연령층에서 발병할 수 있지만 주로 젊은 층에서 나타난다.
크론병은 10·20대 환자가 제일 많고 궤양성 대장염은 30대 중후반에 흔히 나타난다. 크론병은 입부터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염증이 발생할 수 있고 염증이 산발적으로 여러 곳에 퍼져 있으며 깊은 궤양을 동반한다. 복통과 체중 감소가 주된 증상이다.
반면 궤양성 대장염은 염증이 대장에만 국한돼 생기고 주로 장 점막의 얕은 부분에 연속적으로 분포하며 대표 증상은 혈변이다. 일반적으로 궤양성 대장염에 비해 크론병이 심각한 질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염증성 장질환의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뚜렷한 예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단지 유전, 환경, 면역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단, 가족력이 있으면 발병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구화된 식습관과 감염, 흡연, 소염 진통제 등이 국내 염증성 장질환 증가의 가설로 언급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