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앞으로 1년은 한은 진정한 실력 검증받는 해”

입력 2023-06-12 10:00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앞으로도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를 면밀히 점검하는 가운데 성장의 하방위험과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 그리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도 함께 고려하면서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운용해나가야 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시기에 풀린 돈을 흡수하는 긴축 정책으로 일관했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앞으로는 국내외 금융 상황을 고려해 정교하게 변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총재는 한은 창립 73주년 기념사에서 “다행스럽게 물가오름세는 지난달 3.3%까지 낮아졌다. 다만 기조적 물가흐름을 나타내는 근원인플레이션은 아직 더디게 둔화되고 있어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최근에는 주택시장의 부진이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부동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금융부문 리스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장기적 시계에서는 금융불균형이 재차 누증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해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작년 하반기에는 미 연준이 금리인상 기조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고, 설상가상으로 레고랜드 사태가 겹치면서 금융·외환시장의 불안이 심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행은 정부·감독당국과의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했고, 위기 극복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또 “쉽지 않은 1년을 보냈지만, 앞으로의 1년도 녹록지 않을 것 같다. 특히 한국은행의 진정한 실력을 검증받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 1년간은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공통적으로 빠르게 금리를 인상했다”며 “그러나 올해는 국가별로 물가오름세와 경기상황이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trade-off)에 따른 정교한 정책대응이 중요해졌으며, 그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능력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의 정책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 총재는 “지금까지 한국은행의 주된 정책대상은 은행이었다”며 “한국은행법에서 금융기관이라 함은 은행만을 의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이미 2000년대 들어 은행을 넘어섰고 한은금융망을 통한 결제액 비중도 지속적으로 커져 왔으며, 은행과의 자금거래 확대로 은행과 비은행 간 상호연계성도 증대됐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비은행의 중요도와 시스템의 복잡성이 증대되었기에 은행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금융안정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며 “감독기관과의 정책 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제도개선을 통해서라도 금융안정 목표 달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내부 경영 변화는 지속할 방침이다. 이 총재는 “많은 논의를 통해 마련한 ‘경영인사 혁신방안’을 속도감 있게 도입한 가운데, 토론문화 확산, 자료공유 확대 등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여러분(한은 임직원)의 협조 덕에 ‘한은사’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시끄러운 한은’을 향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며 “이는 제가 누차 강조했던 것처럼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자’는 것이며, 상사의 지시라면 수긍하기 어려워도 분위기를 고려해 그냥 받아들이던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부탁”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