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임박했지만 세간의 이목은 구체적인 정책 내용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 조정 여부에 쏠리는 분위기다. 반년마다 수백개씩 정책을 쏟아내다 보니 정책의 상당수가 기존 정책 재활용이나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난히 경제가 어려운 올해야말로 정부가 내실 있는 발표로 한국 경제의 나아갈 길을 국민에게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7월 초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제정책방향 발표는 세제개편안과 경제 부처의 연내 최대 일정으로 꼽히는 대형 행사다. 이때 발표되는 굵직한 정책만 수십개에 달하고, 수록되는 전체 정책 수는 200개를 넘나든다. 정부의 공식적인 경제 동향 분석과 전망도 이때 함께 공개된다. 정부는 그동안 매년 12월과 6~7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상·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해왔다. 올해도 시점은 예년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현재의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자리를 잡은 과정은 한국의 경제 성장 역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뿌리는 박정희정부가 1962년부터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정부는 제2차 5개년 계획에 착수한 1967년부터 ‘총자원예산’이라는 이름의 연례 프리젠테이션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총자원예산은 기존에 수립된 5개년 계획에 투입되는 자원 배분을 연단위로 구체화하고 추진을 뒷받침하는 역할이었다. 1978년 한국 경제가 양적·질적으로 팽창하면서 총자원예산은 ‘경제운용계획’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주된 기능도 자원 배분보다는 정책 제시에 집중됐다.
해마다 두 번씩 새 정책을 발표하는 현행 제도의 틀이 잡힌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전부터 정부는 특이 동향이 있을 때마다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했지만 그 빈도는 노태우정부 이후 급격히 높아졌다.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동향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문민정부 후반부터는 연 2회 발표가 사실상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에 명칭에도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노태우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는 정부가 정책의 전권을 쥔다는 인식을 반영한 표현인 ‘운용’이 주로 활용됐다. 문민정부에서는 그보다 조금 톤을 낮춘 ‘운영’을 꺼내 들었다. 현재의 명칭인 ‘경제정책방향’은 최초에 김대중정부에서, 2010년 이후에는 이명박정부에서 채택한 명칭이다.
한편 상반기 내내 경기 침체가 이어진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정책보다도 함께 나오는 정부의 경제전망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상저하고’를 외치면서 한국 경제가 올해 1.6% 성장한다고 예측했던 정부가 국내외 다른 기관들처럼 한국 경제성장률을 추가로 낮출지에 대해서다. 반면 구체적인 정책 내용에 대해서는 같은 달 공개되는 세제개편안에 비해 확연히 관심도가 떨어지는 분위기다.
상당수의 정책이 이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재탕 정책’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일례로 유턴기업이 기존 사업장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증설을 하더라도 세액을 감면해준다는 정책은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3년 경제정책방향과 6개월 먼저 나온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나란히 이름을 올린 KDB산업은행 현물 출자는 발표 때마다 출석을 놓치지 않는 ‘단골 정책’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나 소상공인 국유재산 임대료 감면 등의 기존 조치 연장 정책도 신선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입법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는 정책들도 종종 보인다.
그나마 정권 출범 초기라서 비교적 전 정권과의 차별화가 이뤄지는 상태가 이 정도다. 2019년 행정논총에 실린 ‘아이디어와 정책선택에 관한 경험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경제정책방향의 평균 연간 차이도는 고작 22.9%에 그쳤다. 차이도가 30%를 웃돈 해는 정권 교체가 이뤄진 2008년, 2013년과 글로벌 경제위기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2009년뿐이었다. 반대로 이명박정부 마지막해인 2012년에는 소재와 동력이 모두 고갈되면서 차이도가 12.7%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사실상 기존에 내놓은 대책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던 셈이다.
상·하반기에 겨우 6개월의 시간 차를 두고 발표하다 보니 정책 중복을 피하기가 한층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현재의 정부 업무 구조에서는 연 2회 발표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경제정책을 발표하는 시기는 전년도 12월인데, 막상 세제개편안과 예산안 편성은 전부 하반기에 이뤄지다 보니 연중에 추가로 경제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늘 변하는데 연말연초에 전제한 정책 방향을 계속 가져가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상반기부터 이어진 세수 부진과 신속집행으로 정책 여력이 부족해 정부가 뚜렷한 정책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경제정책방향의 역할은 오히려 커졌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충실한 경제정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초 예상에 비해 경제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민간에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