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CJ제일제당 ‘햇반전쟁’ 점입가경…“독과점 기업 빠지니 중소기업 살아났다”

입력 2023-06-11 17:22
쿠팡 제공

쿠팡과 CJ제일제당의 ‘즉석밥 전쟁’이 뜨겁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햇반’ ‘비비고 만두’ 등 일부 간편식의 납품 단가에 대한 입장 차로 지난해 말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쿠팡은 CJ제일제당 제품을 6개월 넘게 발주하지 않고, CJ제일제당은 신세계·네이버 등 쿠팡의 경쟁사와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와중에 쿠팡이 이례적으로 “독과점 식품기업 제품이 쿠팡에서 사라지면서 중소·중견기업 제품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CJ제일제당을 ‘독과점 식품기업’으로 겨냥하면서 두 회사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쿠팡은 11일 “지난 1~5월 식품 판매 추이를 분석한 결과, 국내 식품시장에서 수십 년간 독점 체제를 구축하던 독과점 식품기업 제품이 쿠팡에서 사라지면서 중견기업 즉석밥 제품은 최고 50배, 중소기업 제품은 최대 100배 이상 성장했다”고 밝혔다.

유통업체가 ‘독과점 식품기업’이라는 표현을 쓰며 입점 업체의 매출 성장세를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이 쿠팡은 특정 카테고리의 매출 추이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쿠팡의 입점 중소기업이나 특정 지역 농가의 매출 성장세를 공유하기는 했으나 특정 카테고리에 대해 기간을 설정해 구체적인 변화를 밝힌 것은 전례가 없다.

쿠팡이 공개한 수치는 이렇다. 즉석밥 시장 점유율 ‘햇반’이 빠진 쿠팡에서 중소기업 ‘유피씨’는 상반기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1만407%라는 급성장을 이뤘다. 100배 이상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쿠팡의 ‘곰곰’ 즉석밥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시아스’의 성장률은 7270%에 이르렀다. 하림의 프리미엄 즉석밥도 전년 동기 대비 4760%의 급성장을 이뤘다.

쿠팡 제공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국내 즉석밥 시장점유율은 CJ제일제당 ‘햇반’이 66.9%로 압도적 1위, 오뚜기의 ‘오뚜기밥’이 30.7%로 2위다. 두 회사의 즉석밥 시장 점유율은 97.6%였는데 쿠팡에서의 매출 변화가 시장점유율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즉석밥 등 식품 품목마다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확보한 독과점 대기업이 빠지자 ‘성장의 사다리’에 오르지 못한 무수한 후발 중소·중견 식품업체들이 전례 없는 성장 모멘텀을 확보했다”고 자평했다.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확보한 독과점 대기업은 CJ제일제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쿠팡과 CJ제일제당이 완전히 결별을 선언한 것은 아니다. 두 회사의 판매수수료 협상은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회사가 손을 잡아야 각자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합의 길을 열어둔 상태로 각자의 살길을 모색 중인 셈이다.

쿠팡은 ‘독과점 대기업이 빠지자 중소·중견기업 제품이 잘 나간다’는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의 경쟁사와 협업으로 견제에 들어갔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 네이버쇼핑의 ‘도착보장 전문관’에 입점했고, 지난 8일에는 신세계 유통 3사(이마트·SSG닷컴·G마켓)와 협업도 발표했다. 쿠팡의 강력한 두 경쟁사(네이버·이마트)와 협력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CJ제일제당과 신세계 유통 3사 협업 로고. CJ제일제당 제공

두 회사의 격돌이 소비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 된다. 쿠팡이 유통업계의 독점적 지위를 가져가지 않는 것과 CJ제일제당이 식품 제조 시장을 독식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담보되는 게 소비자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다.

식품·유통업계 안팎에서는 두 대기업의 기싸움이 쉽사리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이 쿠팡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당장 소비자 가격에 긍정적일 수는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제조사의 가격 협상력을 낮추는 일로 각인될 것”이라며 “CJ제일제당이 쉽게 꺾이지도 않겠지만, 그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의 갈등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행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제조 대기업과 유통 대기업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유통 대기업이 맞다”며 “쿠팡이 아니어도 견제할 수 있는 유통 대기업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현재 시장이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