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가 자연경관이 빼어난 풍암호 원형보존 여부를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혈세 낭비로 지탄받은 ‘제2의 지산IC’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수위를 낮추고 담수량을 줄이기로 결정해 시민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광주시는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추진 중인 중앙1지구 풍암호(풍암저수지) 원형보존이 어렵게 됐다”고 11일 밝혔다.
풍암호를 그대로 두고 20년 이상 미뤄온 공원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민간아파트를 짓는 절충안을 모색했으나 민원에 의해 특례사업 내용을 도중에 변경할 경우 후폭풍이 크다는 것이다.
시는 원형보존에 집착해 특례사업 인·허가 절차를 바꾸면 향후 민간아파트 사업자와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2019년 해당 분야 전문가와 환경단체 대표 등이 참여한 풍암호 수질개선 전담팀이 가동된 이후 시와 사업자가 합의한 풍암호 수질개선 방안은 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인·허가를 코앞에 둔 상황이다.
시는 풍암동 주민자치위와 시민사회단체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원형보존을 전제로 한 사업내용 변경을 신중히 검토했다. 하지만 법적 한계에 봉착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재심의 절차를 받는 데만 10개월 정도의 기간이 더 필요해 사업자 금융이자 부담이 커진다.
원형보존 실현 방안도 마뜩잖다. 시는 원형을 살린 채 수질개선 비용을 사업자로부터 현금으로 받아 집행하는 방식을 고민했으나 법률 검토 결과 현물이 아닌 현금 기부채납은 불가능하다는 자문을 받았다.
이에 따라 시가 사업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면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뒤따른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다 담수 수질개선에 필요한 정화시설 초기투자비 수백억원과 연간 20억~30억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사후 시설 관리비도 걸림돌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민간공원 특례사업 협약서에는 사업자가 현재 4~6등급으로 여름철마다 녹조와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는 풍암호의 악화한 수질을 최소 3급수 수준으로 개선한 뒤 공공 기부하게끔 돼 있다.
결국, 시는 고심 끝에 풍암호 수질개선 전담팀(TF)이 제시한 ‘수심·수량 조정’ 원안을 고수하기로 했다.
TF는 풍암호 수심을 2.8~4.9m에서 평균 1.5m로 낮추고 담수량도 34만t에서 16만t으로 절반 이상 줄이는 수질개선 방안을 권고했다. 이럴 경우 호수면적도 12만㎡에서 10만㎡ 정도로 축소된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난 3월 강기정 광주시장이 광주중앙공원주민협의회체와 가진 면담에서 약속한 ‘원형보존’을 정면으로 뒤엎은 결과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5000여명의 서명 참여를 통해 풍암호 원형보존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들은 시가 갑자기 입장을 번복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광주 도심의 대표적 수변공간으로 꼽히는 풍암호는 1956년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됐다가 1990년대 풍암택지개발 이후 아파트 단지가 주변에 잇따라 들어서면서 나들이와 산책 코스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시는 2019년 도시공원 일몰제가 적용된 금호 풍암 화정동 일대 풍암호를 중심으로 한 공원조성 예산을 사업자가 부담하는 대신 민간아파트 등 2800여 세대를 지어 분양하도록 하는 특례사업에 착수했다.
앞서 시는 장원초교 인근 주민 등의 거센 반대로 지산IC 위치를 바꾸고 소음, 분진 등을 우려한 주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당초 우측으로 설계한 진출로 위치를 좌측으로 변경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100억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간 지산IC를 개통도 하지 못하고 4월 폐쇄하는 진통을 겪었다.
시 관계자는 “경관 보존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호수 일부를 메우고 수심을 낮추더라도 수질개선, 법적 절차를 우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시민들에게 현실적 한계를 설득해 특례사업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