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열여덟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교회 개척을 하면 으레 ‘사모의 역할의 크다’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경험을 해보니 그야말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 할만큼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클래식 피자에 넘치도록 끝없이 추가할 수 있는 토핑 같았다. 아내는 성도들이 올 때 밝게 인사하며 맞이하는 안내자로서 웰컴 테이블에 놓인 촛불, 웰컴 레터, 오늘의 찬양이 담긴 악보, 예배 안내지 등을 설명하는 큐레이터 역할을 감당하며 자신의 역할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해 왔다.
지구마블 세계여행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보드게임 부루마블을 모티브로 여행 유튜브 콘텐츠와의 콜라보를 이룬 프로그램이다. 세 명의 여행 유튜버가 주사위를 던져 나온 나라들로 이동하며 자신만의 여행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를 유튜버 버전과 TV 방송용 버전으로 나누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편집점을 달리해 다른 맛을 보여준다.
교회 공동체의 개척 과정을 돌아보니 닮은 점이 많다. 1인 크리에이터처럼 여행을 준비하며 방향을 잡고 아내와 딸이 같이 여행하듯 걸어왔다. 예배의 순서, 대표 기도의 유무, 웰컴 테이블의 구성, 악보 준비, 찬양의 곡 수 등 준비해야 할 요소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신이 났다.
예배 설교가 정리되면 본문의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는 곡을 보물찾기하듯 함께 찾았다. 어떻게 하면 예배의 자리에 오는 성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공간에 들어설지 고민할 땐 생일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아이의 순수한 기쁨이 우리 가정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예배를 채워갔다.
이렇게 한 주씩 예배는 드려졌고 조금씩 수정을 거쳐 우리 공동체에 맞는 예배 구성을 만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뭔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의 기저에는 멈춤과 정체가 있었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구성이 만들어지고 나니 안도했고 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은 큰 변화를 주기보단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었다. 일을 더 펼쳐나가기보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였다. MBTI(성격 유형 검사)를 떠올려본다. 나는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 아내는 ISFJ(용감한 수호자)다.
아내는 목회자의 동역자로서 예배 준비과정을 신중하고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더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성도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내게 제안을 해주었다. 활발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다 안주함에 봉착했던 ENFP 목사를 이끌어 줬다. 그리고 이 과정이 지속 가능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인도했다. 그렇다. 성경 속 배우자에 관한 대목에 등장하는 ‘돕는 베필’의 끝판왕 같은 존재가 사모였다.
요즘 아내는 전화를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한다. 그리고 약속도 많다. 대부분 성도들과의 통화이며 만남이다. 아내는 얘기를 잘 들어준다. 특히 리액션이 좋다. 그렇다 보니 대화를 나누는 이의 마음이 어느새 무장해제를 당한다(내가 그랬다).
그녀는 주변의 크고 작은 일들을 듣고 자신의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한다. 아이를 재워 두고 침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교회의 개척 시점이 아니라 사모의 개척 시점이 보인다.
아내는 누구에게나 밝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 마음으로 처음 오신 분들에게 다가가는데 경계심을 갖고 있는 방문자는 아내의 친절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 약간 차갑고 퉁명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래도 변함없이 따듯하게 다가간다.
그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은데 끝까지 섬긴다. 예배 후 제일 먼저 찾아가 교회를 나서는 방문자에게 준비된 커피와 간식을 전한다. 물론 괜찮다며 끝까지 받지 않는 분도 더러 있다. 그런 순간엔 차마 사모의 눈을 쳐다볼 수 없다. 그런데 괜찮단다. 아마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말씀드리려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방을 열고 보니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 가슴이 아프다. 한숨이 나온다.
거절감을 통해 더 깊어지는 사모의 기도는 밤마다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기도가 되었고 퉁명스러웠던 방문자의 말은 본인의 달란트인 반주를 헤드폰을 끼고 연주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렇게 예배를 돕는 안내자의 역할을 마치면 피아노 앞에 앉아 예배를 위한 반주를 하나님께 드린다.
아침에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목소리를 생각해 대부분 찬양의 키를 편하게 낮추고 예배의 구간 구간마다 음율이 필요할 때 잔잔히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음악이 있고 없고도 중요하지만 그 상황에 맞는 연주가 더없이 중요한 것을 알고 있기에 늘 집중하여 예배를 섬긴다.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긴다. 그리고 주변 정리를 한다. 최근에 등록한 한 청년을 위해서는 ‘운송의 민족’을 자처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걸어서 오기에 먼 거리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을 보곤 데리러 가겠다고 한 것이다.
사모에겐 계획이 다 있었다. 핵심 배경은 바로 ‘대화’였다.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차안만큼 자연스레 마음 내려놓고 대화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차를 같이 타고 오면서 청년과 사모의 관계가 가까워짐이 눈에 보였다. 얼마 후엔 두 사람의 모습이 자매처럼 보였다. 영적 가족이 된 것이다.
속마음을 차 안에서 나누며 더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니 사모의 역할이 정말 크고 넘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매가 우리 집에 와서 나눈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 “사모님을 만나면 무장해제가 돼요.” 그렇게 성도가 개척 목회자와 동일한 경험을 한다. 또 하나의 동기화 과정인 셈이다. 무장해제가 된 만남, 무장해제가 된 소그룹, 무장해제가 된 연주모임 등 사모의 역할은 계속 토핑처럼 쌓여간다. 그렇게 사모는 개척자의 수호자가 된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