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거부합니다”…항일 순교자 ‘최인규 권사’를 아시나요?

입력 2023-06-08 16:45
‘항일 순교, 순국자 최인규’ 뮤지컬 배우들이 지난 3일 원주 큰나무교회에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기감 동부연회 제공

“하나님만이 경배의 대상이요, 다른 신은 경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신사참배는 절대로 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한 평신도가 재판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체포돼 감옥에서 순교했다. 최인규(1881~1942) 권사의 이야기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동부연회(감독 김영민 목사)는 최근 최 권사의 이야기를 ‘항일 순교, 순국자 최인규’ 뮤지컬로 제작했다.

기획을 맡은 류호정 철원소망교회 목사는 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일제강점기 다수의 목회자와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 등 일본의 정책에 순응했다”며 “평신도인 최 권사는 이를 거부했는데 그의 애국심과 신앙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황성요배와 신사참배, 황국신민서사, 창씨개명 등 일제의 4가지 정책을 거부하다 순교한 최 권사를 조명했다.

교인들과 뮤지컬 배우들이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감 동부연회 제공

최 권사는 ‘돌아온 탕자’다. 기감 한국감리교인물사전에 따르면 최 권사는 1881년 강원도 삼척군(현 삼척시)의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다. 순탄한 삶을 살 줄 알았던 그는 부인이 긴 투병으로 사망하자 술로 세월을 보냈다.

최 권사는 43세가 되던 1924년 주변의 권유로 북평교회(현 북평제일감리교회)에 출석하면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김기정 담임목사로부터 신앙생활에 대한 지도를 받으며 믿음을 키워나갔다.

최 권사는 교회 소모임인 속회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속장과 주일학교 교사로서 교인들을 섬겼으며 신앙심을 인정받아 8년 만인 1932년 권사가 됐다. 그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1940년 5월 체포됐다. 최 권사는 고문과 잦은 단식으로 몸이 쇠약해졌고 결국 1942년 겨울 대전형무소에서 눈을 감았다.

역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최 권사의 믿음은 누구보다 특별했다. 신사참배를 하면 석방시켜 준다는 등의 유혹이 있었으나 끝까지 거부했다. 류 목사는 “평신도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며 “신앙 선배의 삶을 통해 교인들이 올곧은 신앙을 갖고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원주 큰나무교회(김홍구 목사)는 지난 3일 이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 교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최현숙 권사는 “신앙의 절개를 지킨 평신도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믿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부터 전체적인 이야기가 모두 감격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