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경쟁자 많은 게 이득’…한배 탔던 펜스 부통령도 경쟁 합류

입력 2023-06-08 06:02

공화당 주요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하며 반(反)트럼프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대선주자로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불안감을 자극해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군소 후보들이 반트럼프 여론을 분점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본선행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경선 과정에서 비우호적 분위기가 확산할 경우 중도층 지지가 흔들려 본선 경쟁력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7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대선 출마식에서 “(2021년) 1월 6일은 미국 역사상 비극적인 날이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모한 말 한마디가 모든 사람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밝혔다. 펜스 전 부통령은 “그 운명의 날 트럼프는 나에게 자신과 헌법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는 사실을 미국 국민이 알아야 한다”며 “이제 유권자들은 같은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헌법을 무시하는 누구라도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직 부통령이 자신과 함께했던 대통령을 상대해 출마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며 “펜스는 자신이 트럼프의 강력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경력을 홍보해야 하는 어색한 과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선 주자들도 반트럼프 전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전날 뉴햄프셔주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을 분열시키고 더 작게 만들었다”며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모질고 화난 사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외톨이’ 등으로 부르며 “거울에 집착하고,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이 잘못되면 항상 다른 탓할 대상을 찾지만 잘 되면 어떻게든 (자신의) 이유를 대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크리스티 전 주지사 역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펜스 전 대통령과 함께 ‘측근’ 그룹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인수위 팀을 이끌었고, 대통령 고문 자리에도 올랐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사기 주장을 펴면서 갈라섰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최근 CNN 타운홀 미팅에서 1·6 의회 폭동에 대해 “그(트럼프)는 그날을 아름다운 날이라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끔찍한 날이었다”며 이런 의견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도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공화당 대선 주자는 10명으로 늘었다. AP통신은 “트럼프 측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를 제외한 어떤 후보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무너뜨릴 만큼 반발 표심을 결집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트럼프는 라이벌이 많을수록 좋다”고 분석했다. 경선에 참여한 다른 후보들이 디샌티스 주지사가 선점하고 있는 표를 나눠 갖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데이터 분석업체 파이브서티에잇이 주요 여론조사 기관 발표를 종합해 평가한 지지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53.7%로 디샌티스 주지사(21.3%)를 32.4% 포인트나 앞선다. 지난 3월 1일 두 후보 지지율은 각 45.0%, 29.7%였는데, 이후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특히 공화당 대선주자 출마가 이어진 지난달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50~53%대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친(親)트럼프 지지자들은 변심하지 않고, 거꾸로 반트럼프 지지자들은 나머지 후보군에 분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 반트럼프’ 경쟁이 격화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약점이 부각돼 무당파 유권자 표심 공략이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의 최근 발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심각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허용해야 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62%가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공화당 지지층 39%도 대통령직 수행 반대 입장을 보였다. 무소속 유권자 사이에서 성인 배우 관련 성 추문 입막음 사건, 기밀문서 유출 사건이 심각한 범죄라는 응답도 각각 41%, 49%로 나타났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