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1989년 민주화 이후 34년만에 50만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집권 법과 정의당(PiS)의 극우 포퓰리즘에 항의하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자유선거 34주년 기념 집회에서 엄청난 폴란드 시민들이 참가해 정부에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집회를 주도한 도날트 투스크 전 총리는 언론과의 접촉에서 “숫자인 50만명이 모였다”면서 “공산주의 시대가 끝난 뒤 최대 규모의 정치 집회였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에는 89년 자유노조 운동을 주도하며 옛 소련 체제하의 동구권 국가로는 처음으로 자유선거를 이뤘던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도 참가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집회는 89년 6월 부분적이나마 처음으로 치러진 자유 선거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됐다. 당시 예상을 뒤엎고 자유노조가 압승을 거두며 전후 동구권에서 처음으로 비공산 정권이 탄생했다.
제1야당인 시민강령당(PO) 대표인 투스크 전 총리가 주최한 시위에는 다른 야당들도 대부분 동참했다. 또 성전환자 권리 활동가와 다양한 인권단체, 노조 대표까지 폴란드의 민주화 세력이 총망라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폴란드와 유럽연합(EU) 국기를 들고 나왔고, 집회는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투스크 전 총리는 연설에서 “자유노조의 슬로건은 ‘우리는 결코 분열하거나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면서 “민주주의의 적들의 거대한 야망은 과거나 지금이나 아무런 쓸모가 없었으며, 되레 우리의 힘을 강화시켰을 뿐”이라고 웅변했다.
이어 “우리는 강하고, 그때처럼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음을 폴란드, 유럽, 세계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로 재임한 그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5년 임기를 마친 뒤 국내정치로 복귀했다.
NYT는 “투스크 총리의 연설은 최근 PiS가 ‘러시아 영향 공직자 퇴출’ 법안을 내놓자 일제 반발한 야당과 민주화 세력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법안은 2007년 이후 러시아가 끼친 영향력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활동한 사실이 확인된 공직자에 대해 최대 10년간 공적 자금 및 보안인가 관련 업무 종사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폴란드 전역에 반(反) 러시아 정서가 팽배해지자,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오는 10월 총선에서 투스크 전 총리를 배제하려는 의도로 법안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 각종 현지 여론 조사에 따르면 PiS와 PO 모두 단독 정부를 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미국 등 서방에서도 비판이 빗발치자, 두다 대통령은 수정안을 내겠다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두다 대통령이 이끄는 PiS는 민족주의 성향의 보수 정당으로, 2015년 집권한 이래 꾸준하게 법치주의 훼손, 성소주 권리 제한 등으로 EU로부터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아왔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