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게임을 못 한다, 징징거린다,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선입견이 제일 싫었고 힘들었죠”
‘오버워치 대학 경쟁전 2018 SPRING’ 여성 참가자 신가현 씨(26, 익명)는 그토록 좋아하는 게임을 최근 그만뒀다. 음성 채팅을 통해 여성임을 드러내면 비하 발언이 돌아오는 일을 몇 번 겪은 뒤다. “특히 ‘혜지(플레이에 소극적인 여성을 의미하는 말)’라는 밈이 유행하면서 기존의 ‘여왕벌’ 호칭과 더불어 비하하는 분위기가 심해졌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진입 장벽 된 ‘혐오 표현’ ‘성희롱’ ‘선정적 그래픽’
같은 팀에 속했던 허윤하 씨(26, 익명)도 신씨의 말에 동의했다. 허씨는 “여자라고 하면 희롱하거나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여성 게이머 중엔 여자인 걸 티를 내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언급했다.실제로 2021년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게임과 여성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게임 이용자의 69.4%가 게임 속에서 성별에 기반을 둔 차별이나 혐오적인 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신씨는 과도하게 여성의 신체적 특성이 두드러진 캐릭터도 문제라고 꼽았다. “남성향 게임에서 과하게 가슴을 강조하는데, 기왕이면 현실적으로 표현해줬으면 한다”라며 “같은 여성인 내가 봐도 부끄럽고 야하다”라고 지적했다.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염서영 씨(27, 익명)는 선정적인 캐릭터 디자인에 대해 “전공자 관점에서 게임 이용자 성비가 남성이 높으므로 시장 정황상 이해가 가지만 여성 디자이너로서만 보면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라고 전했다.
주류 여가 문화 된 게임… 여성 게이머 증가 추세
국민 10명 중 7명이 하는 게임. 게임이 주류 여가 문화로 자리 잡는 동안 게임을 즐기는 여성도 크게 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표본 3042명 중 75.3%가, 여성 표본 2958명 중 73.4%가 게임을 즐겨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 여성의 게임 이용률 43.9%보다 약 30%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성별에 따른 지출 비용 및 비율에서도 여성이 적지 않은 돈을 썼다. 확률형 아이템 총지출 경험이 있던 비율은 남성과 여성이 28.8%와 28%로 비슷했으며 총 지출액 평균은 남성이 6만5541원, 여성이 5만9447원이다. 모바일 게임 이용 비용 평균은 남성이 4만8809원, 여성이 3만526원을 냈다. 여성 이용자도 게임을 할 때 소비력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게임 제작사나 배급사 종사자는 남성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게임 제작 및 배급 업체 대표자의 성별이 남성은 92.6%, 여성은 7.4%로 크게 차이 났다. 게임 산업 전체 종사자의 성별 구성은 남성(71.2%)이 여성(28.8%)에 비해 월등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ESG 경영 확대 추세… 게임사들의 사회적 책무↑
국내 게임사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사회적 책무도 짊어져야 한단 요구가 제기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성 평등 정책도 그중 하나로 꼽히는 상황이다. 미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2022 ESG 경영 리포트를 발표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겠단 방침을 명시했다. 소수 인종 여성을 캐릭터 디자인에 담는 팀을 출범하고, 여성 고용자 수를 늘리겠단 내용이다.
다만 가장 큰 진입 장벽인 ‘혐오표현’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단 지적이다. 현재 게임사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혐오 및 성희롱 표현 필터링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진하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게임 속 성희롱에 대응하는 정책과 보호 시스템에 대한 이용자들의 인식에서 여성 게임 이용자의 48.7%가 게임 업계의 성희롱에 대한 대응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김여사’, ‘여왕벌’, ‘혜지’, ‘보X(여성 성기를 의미하는 비속어)’ 등 여성 혐오 표현이 여전히 온라인상에 만연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동인 임혜진 변호사는 “혐오 표현과 관련해서 증거가 필요하니까 신고 제도나 증거를 확보해주는 시스템을 회사가 만들어 놓을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라며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반감을 갖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게임에 대한 접근성과 대중성이 넓어지는 만큼 게임사의 사회적 책무도 따라가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10대, 20대 이용자가 게임 내 혐오 표현을 접하고 잘못된 인식을 배울 수 있는 점이 우려된다면서 “게임의 위상은 전보다 높아졌다. ESG 경영을 준수한다는 차원에서도 사회적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진솔 인턴기자 s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