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중개 앱으로 만난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이 명문대 학생이었던 피해자의 신분을 훔치고자 하는 의도로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정유정은 201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5년간 별다른 직업 없이 사실상 ‘은둔형 외톨이’로 생활해왔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고, 생계는 할아버지가 꾸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정은 폐쇄적인 성격으로, 평소 사회적 유대 관계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외출하는 일은 드물었고, 집에서 범죄 관련 소설이나 온라인 콘텐츠를 즐겨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들은 평소 말 없고 조용한 성격이던 정유정이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정유정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유정의 할아버지는 1일 MBC에 “(손녀가) 다음 달 공무원 필기시험이 있었다. 독서실, 도서관 이런 데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상상도 안 했던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손녀를 잘못 키운 죄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유족들한테 백배 사죄하고 싶다. 내 심정이 그렇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이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고학력 대학생이 포진한 과외 앱을 동원했고, 특히 온라인상에서 인기 있고 높은 학력을 가진 피해자를 지목한 점에 주목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의 신분 탈취(를 위한 범행이었을 것으로 의심된다)”며 “(피해자가)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과외 교사였지 않냐. (정유정은)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여성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훔치려고 했던 것 같다”고 MBC에 설명했다.
경찰은 정유정에 대해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심리상담을 진행한 데 이어 반사회적 인격장애, 사이코패스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정유정은 과외 앱에서 중학교 3학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 행세를 하며 피해 여성에게 접근했다. 범행 대상을 확정한 뒤에는 중고로 교복을 구해 입고 피해자를 찾아갔다. 당시 집에 혼자 있던 피해자는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한 것으로 보인다.
정유정은 지난달 26일 오후 5시40분쯤 부산 금정구에 있는 피해자 집에서 흉기로 피해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한 뒤 여행용 가방에 담아 택시를 타고 경남 양산 낙동강 인근 숲속에 시신 일부를 유기했다. A씨의 범행은 혈흔이 묻은 캐리어를 숲속에 버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택시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드러났다.
포렌식 결과 정유정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범행 석 달 전인 올해 2월부터 온라인에서 ‘살인’ 등을 집중적으로 검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평소에 방송 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범죄수사 프로그램을 많이 보며 살인에 관심을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전에 ‘살인’ ‘시신 없는 살인’ ‘살인 사건’ 등의 검색을 한 데 이어 지역 도서관에서는 범죄 관련 소설도 빌려봤다.
경찰 관계자는 “정유정이 ‘죽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진술했다”며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