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석·박사 학위 과정을 개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예종 설치법’을 놓고 전국 예술대학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전국 예술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예종 설치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전국예술대학총학생연합(예총련)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예교련)이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수도권 각 예술관련학과 대학원 및 대학생 대표자 1000여명이 참석했다.
한예종은 199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에 따라 예술 영재교육, 수월성 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서 대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되어 있어 석·박사 학위 수여가 불가능하다. 대학원에 해당하는 예술전문사 과정을 이수한 뒤 상급학교의 박사 과정에 입학했을 때만 석사 학력이 인정된다. 이에 한예종은 한예종 설치법을 숙원사업으로 삼고 해당 법안 통과를 추진해 왔다. 한예종의 법적 지위를 강화해 예술 전문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른 대학과의 교류·협력 등을 통해 예술 전문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대진 한예종 총장은 지난해 10월 개교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에서 유학 오는 학교가 되기 위해 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예종이 대학원까지 두게 되면 지금도 국내 예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한예종의 독식이 심화할 우려가 크다. 실제 이런 문제로 한예종 설치법은 1999년, 2004년 추진됐다가 기존 대학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한예종 설치법을 반대하는 측은 예술실기 교육 위주로 설립된 한예종이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원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원래 개교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과 한국예술교육학회는 전날 한예종 설치법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예술교육의 자율적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면서 “문화부 소속기관인 한예종에 교육부 인정 석박사 학위 과정을 신설하는 것은 유아 대상 영재교육원부터 박사과정까지 한예종 안에서 수직계열화해 독점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예종은 교육부 소속 예술대학과는 달리 문화부 소속으로 관련 정보 및 물적 지원을 충분히 받고 있고, 교수 요원도 예술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주장했다. 차영수 전국예술대학총학생연합 대표는 “지역 예술대학은 죽어가고 있는데 왜 한예종만 특별대우하는가”라며 “한국의 예술은 한예종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며 한예종은 한예종의 역할이, 예술대학은 예술대학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문화예술법안 소위원회는 이날 오전 ‘한예종 설치법’을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국 예술대학의 반대가 심하자 관련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회의 일정은 아직 정해지진 않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