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집행관이 들어오자 LPG가스통에 라이터를 들고 “다 같이 죽자”고 외치는 등 위력으로 강제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건축조합의 위임을 받은 집행관 업무를 방해한 것이지, 조합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B씨 부부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B씨 부부는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위치한 재개발조합 구역 내 건물 지분을 절반씩 갖고 있었다. 2018년 5월 조합 측으로부터 강제집행 위임을 받은 집행관이 건물 철거에 나서자 두 사람은 “보상액이 너무 적다”며 집행을 막아섰다. A씨는 자기 차량으로 건물 입구를 막았고, B씨는 건물 2층 베란다에서 LPG가스통에 라이터를 들고 “다 같이 죽자”고 소리를 질렀다. 검찰은 이들이 정당한 명도집행을 막아 조합 측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1·2심은 부부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각각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위력을 행사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조합에서 위임을 받은 제3자가 업무를 한 경우여도 이를 방해했다면 조합의 업무가 방해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집행관은 독립된 단독의 사법기관”이라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명도소송 확정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은 집행관의 고유 업무이고, 재건축조합의 업무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집행관에 대한 집행 위임은 집행개시를 구하는 신청을 의미할 뿐 일반적인 민법상 위임을 뜻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강제집행은 조합의 업무가 아닌 집행관의 고유한 직무에 해당하다고 봐야 한다”며 “피고인들이 집행관의 강제집행 업무를 방해한 일을 조합의 업무를 직접 방해한 것으로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집행관의 법률상 지위를 확인함과 동시에 집행관 위임의 법적 성격은 절차상 집행개시 신청에 해당한다는 것을 최초로 선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