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에 ‘OO’ 적었다고 삭제…배달의민족 ‘황당’ 해프닝

입력 2023-05-25 00:23 수정 2023-05-25 10:09
지난 12일 디저트가게를 운영하는 최모(37)씨가 배달의민족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구체적으로 어떤 메뉴의 이름이 기준에 맞지 않은지는 안내되지 않은 채 메뉴명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15일에 수정 또는 삭제될 예정이라고만 통보됐다(왼쪽). 이후 15일 배민이 다시 문제를 지적하며 보내온 메시지. 최씨가 메뉴명을 적은 방식은 같았는데도 배민측이 제시한 삭제 사유는 제각각이었다(오른쪽). 최씨 제공

“지난주에 메뉴 4개가 삭제됐어요.”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며 배달앱을 2년 넘게 써온 최모(37)씨는 지난 15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메뉴 2개가 임의로 삭제된 것이다.

메뉴를 새로 등록하고 알림톡을 확인해 보니 지난 12일 배달의민족으로부터 ‘기준에 맞지 않는 메뉴가 있어 (이름을) 수정하지 않으면 15일에 수정 또는 삭제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정확히 어느 메뉴가 어떤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이날 오전 배민으로부터 메뉴 2개가 수정 또는 삭제될 거라는 알림이 한 차례 더 왔다. 바로 다음 날인 16일 실제로 메뉴 2개가 또 지워졌다.

지난 18일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올라온 글. 작성자는 메뉴명에 적어둔 재고 정보를 지우지 않으면 메뉴가 삭제될 수 있다는 말을 배달의민족으로부터 들었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 캡처

같은 일을 겪은 건 최씨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재고 수량을 담은 메뉴명을 수정하지 않으면 메뉴가 수정 혹은 삭제될 거라는 안내를 받았다는 디저트 가게 점주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메뉴가 삭제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씨를 비롯해 ‘아프니까 사장이다’의 회원들은 배민으로부터 ‘재고 수량을 메뉴 이름에 적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디저트는 유통기한이 짧아 보통 수량을 5개 내외로 준비해 둔다”면서 재고 수량을 메뉴 이름에 적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주문이 들어왔다고 바로 만들기도 어려워 고객이 준비된 수량보다 많이 시키면 전화로 다른 메뉴로 대체할지, 아니면 주문을 취소할지 등을 물어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은 수량을 안내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다.

배민 측은 회원들에게 “메뉴명 말고 다른 글자나 숫자를 쓴 게 실제 판매되는 정보와 달라 모니터링에 의해 삭제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메뉴명에 (수량을) 표기하지 않더라도 품절을 통해 편리한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배달의민족은 24일 메뉴 모니터링 과정에서 메뉴명에 '재고 수량'을 기재할 수 없다고 일부 점주들에게 잘못 안내한 것과 관련해 사과했다. 최씨 제공

메뉴 이름에 재고 수량을 적는 것까지 문제삼는 배민의 방침에 점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배민은 뒤늦게 메뉴 삭제가 작업자 실수에 의한 해프닝이었다며 방침을 수정하기로 했다.

배민 관계자는 지난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작업자가 분류를 잘못해 재고 수량을 표기한 것까지 필터링되도록 조치한 탓에 (점주들에게 메뉴명을 수정해 달라는) 안내가 나갔다”며 “메뉴 이름에 재고 수량을 적는 것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여전히 각 점주에게 명확한 안내를 안 하고 있던 배민은 24일에서야 잘못 안내를 받은 점주들을 대상으로 “메뉴명에 재고 수량을 다시 기재할 수 있도록 조치했고,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메뉴 모니터링 과정을 보완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현시점에 준비된 음식의 수량이 삭제 당시의 것과는 다를 수 있어 이미 삭제 조치된 메뉴를 일괄 복구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씨는 “메뉴를 새로 등록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이미지까지 추가하려면 배민으로부터 검수를 받아야 한다”면서 “승인을 받기까지 길게는 이틀이 걸리고, 승인을 받지 못하면 또 다른 사진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배민 약관은 광고 정보가 사실과 다르거나 관련 법령 또는 약관, 검수 기준 등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배민이 점주에게 기간을 정해 해당 정보의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점주가 회사의 수정 요청에 응하지 않거나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사전 수정 요청 없이 해당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게 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착오로 인한 해프닝으로 확인되며 논란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배달앱의 과실에도 결국 피해는 점주들이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드러냈다.

이번 해프닝에서 주목할 건 배달앱의 잘못된 조치를 점주들이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이다. 최씨는 고객센터에 수차례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럴 때마다 정책상 어쩔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최씨는 “(고객센터도) 내 메뉴가 악용하기 위한 메뉴명 게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해 황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배달의민족으로부터 메뉴명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메뉴가 수정되거나 삭제될 거라는 안내를 받기 전 최씨가 메뉴명에 재고 수량을 표시한 방식(왼쪽). 최근 배민이 메뉴를 삭제함에 따라 메뉴명이 아닌 메뉴 구성란에 남은 수량을 적는 방식으로 바꾼 것(오른쪽). 최씨 제공

최씨는 메뉴 이름에 재고 수량을 적지 못하게 되자, 메뉴 구성란에 이를 대신 적었다고 한다. 최씨는 “남은 수량을 메뉴 구성란에 적어도 되냐고 묻자 (고객센터로부터) 모니터 진행 시 불필요한 메뉴나 설명 등이 확인될 경우 규정에 따라 조치가 진행된다는 안내를 받았다”며 “(갑자기 메뉴명에 수량을 못 적게 됐던 것처럼) 메뉴 구성란에 재고 수량을 적은 것이 정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뉴가 삭제되지는 않을까 불안했다”고 말했다.

똑같은 방식으로 메뉴명에 수량을 표기했는데 삭제시점과 사유가 매번 달랐다는 점도 점주들을 불안케 하는 대목이다. 삭제 사유도 일관적이지 않았다. 배민은 16일 삭제된 두 가지 메뉴에 대해 ‘하나는 메뉴가 아닌 홍보성·구성·설명이라서, 나머지 하나는 메뉴가 아닌 옵션 메뉴·수량 제한이라서 삭제한다’고 알려왔다.

이에 대해 배민 관계자조차 “모니터링 시 해당 메뉴명 발견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상호를 모르면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서지윤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