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진료 200명… 동네 소아청소년과 병원은 전쟁중

입력 2023-05-24 18:35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의 소아청소년과 병원 원장이 환자가 빠져나간 뒤 처방전을 기록하고 있다. 원장은 이날 오전에만 95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성윤수 기자

지난 22일 오전 7시30분쯤 서울 마포구 한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의원. 진료 개시까지 30분이 남았지만, 이미 의원 앞은 진료를 보러 온 아이와 부모로 가득했다. 개시 10분을 앞두고는 20여명에 이르는 대기 줄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이어졌다. 고열 탓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이 의원 박모 원장은 “출근할 때마다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며 서둘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앞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 “더 이상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폐과를 선언했다. 33년차 소청과 전문의인 박 원장은 전쟁통 같은 현장을 직접 본다면 왜 소청과 의사들이 간판을 내리겠다고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원장은 일주일 중 월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라고 했다. 주말 동안 아팠던 아이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날도 미리 와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 유행하는 수족구병으로 병원을 찾은 이들이 많았다. 박 원장은 대부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꼼꼼히 살폈다. 코에 흡입기를 넣어 콧물을 제거해주기도 했다. 그는 “콧물만으로도 아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며 “아이들은 정확한 증상이나 불편감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핀다”고 설명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비롯한 전문의들이 지난 3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아이를 진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3분. 성인 진료 시간보다 3배 정도 더 걸린다. 부모의 질문이 이어지면 진료 시간은 더 길어지기도 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도 시간과 노력이 제법 들었다. 아이들이 진료 중 다치는 등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선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해야 하는데, 보호자와 간호사를 포함해 어른 3명이 달라붙어야 했다. 이날 박 원장이 어른 환자들에게 가장 자주하는 한 말은 “잘하지, 잘한다”였다.

아이의 몸부림에 의사나 간호사가 맞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독감 검사를 받던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겁에 질려 발버둥을 치다 박 원장의 옆구리를 발로 차기도 했다. 박 원장은 “아이들이라 (진료 중에) 다칠 수도 있고,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 항상 긴장 상태”라고 했다.

박 원장이 이날 오전에 진료한 환자만 95명이었다. 접수된 환자 진료를 마치고 나니 오전 진료 마감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는 1시간가량의 점심시간 후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오후에도 120명 넘는 환자가 찾아왔다. 아파서 온 아이들이 하루하루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선택한 길이었지만, 지금처럼 늘 시간에 쫓겨서는 그런 보람을 느낄 새도 없다고 박 원장은 말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서울 시내의 소아과 10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 사실상 타과로의 이동을 뜻하는 진료과목 전환 교육 프로그램 신청자도 전체 소청과 의사회 회원 5000여명 중 700명가량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 원장 역시 소청과를 접을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코로나19 검사로 성인 진료까지 병행하게 됐을 때 이런 생각이 더 커졌었다고 했다.

박 원장은 “수가가 성인 진료에 비해 적으면서 일의 강도는 세다 보니 전공의들이 소청과를 지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전문의나 교수들마저 번아웃 되는 상황”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소청과 의사들의 이탈은 더 빨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글·사진=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