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 부커상에 ‘타임 셸터’… 천명관 “좋은 독자 많구나 느껴”

입력 2023-05-24 10:47
올해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왼쪽)와 번역가 앤젤라 로델. 부커상위원회 제공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Time Shelter)가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6편의 최종 후보작 중 하나였던 천명관(59) 작가의 ‘고래’는 수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보라의 ‘저주토끼’에 이어 연속으로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한국 문학이 세계 독자들에게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부커상심사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열린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The International Booker Prize) 수상작으로 ‘타임 셸터’를 호명하며 “아이러니와 멜랑콜리함이 가득한 빛나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노벨문학상,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은 영연방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하며,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어로 번역된 비영어 문학작품에 주는 상이다.

수상작 ‘타임 셸터’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유망한 치료법을 제공하는 한 클리닉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잃고 영광스러운 과거에 집착하는 유럽의 암울한 세태를 유머러스한 터치로 풍자한다.

이 작품을 쓴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불가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불가리아 작가가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저자는 부커상조직위원회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가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고래'의 천명관 작가(오른쪽)와 김지영 번역가가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개최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에 참석해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명관은 시상식이 끝난 후 “나온 지 거의 20년 된 ‘고래’로 갑자기 여기까지 왔다”며 “올해의 재밌는 이벤트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굉장히 한국적이고, 옛날 얘기이기도 한데 그렇지만 그 안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들과 감정들, 그러니까 보편성이 있어서 외국인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며 부커상 후보에 오른 것은 ‘고래’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천명관은 “외국 독자들이 이 소설의 특성을 한국 독자들과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 재밌었다. 블랙 유머도, 슬픔도 있는데 이런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세상에 좋은 독자들이 많구나, 이런 것에 좀 위안이 됐다”고 덧붙였다.

‘고래’는 천명관이 2004년 나이 마흔에 발표한 그의 첫 장편 소설이다. 30대 내내 충무로 영화판에서 일하며 시나리오를 썼던 그는 동생의 권유로 석 달 만에 단편소설 ‘프랭크와 나’를 썼고, 그 작품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39세에 등단했다.

천명관의 소설 중 가장 성공한 것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고령화 가족’이고,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 작품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이다. 가족 이야기를 소설의 모티브로 삼은 게 많다.

‘고래’는 천명관에게 “너무 고마운 작품”이다. 10만부 이상 팔리면서 그를 소설가로 알렸고, 이번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다시 그의 문학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고래’는 천명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그 비슷한 작품은 그 후로도 없었다. 시대를 알 수 없는 설화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변사와 비슷한 화자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고, 살인과 성폭력 장면도 빈번하고 나온다.

이야기는 산골 소녀 금복의 영욕과 성쇠가 중심이다. 여기에 박색이라 소박을 맞은 복수심으로 돈에 집착하는 노파, 방화범으로 몰려 수감됐다가 벽돌공장에 돌아온 거구의 춘희가 금복의 삶과 연결된다.

고래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우 새로운 스타일의 문체라는 점,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 세대가 각각 다른 세 여성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가 거쳐온 전근대와 근대의 심리적 풍경을 묘사한다는 점으로 주목을 받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