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어린이와 놀이공간] 자연과 영감을 담은 디자인

입력 2023-05-23 18:26 수정 2023-07-04 16:21
뉴욕 맨해튼구 중심부에 자리한 센트럴파크에는 모두 20개의 출입구가 주변 인도와 연결돼 도심 어디에서나 진출입이 편리하다. 문정임 기자

뉴욕이 뉴요커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연 센트럴파크가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한정적인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을 높게 올려 독특한 고층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한편, 빽빽한 도심에 거대한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이 세계 최대의 도시 안에서도 자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센트럴파크의 20개 출입구는 뉴욕의 핵심부인 맨해튼 구의 각 거리를 연결한다. 시민들은 맨해튼 시내 어디에서나 몇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공원에 들어설 수 있다. 이러한 센트럴파크에는 21개의 놀이터가 있고, 모두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다. <편집자주>

빌리존슨놀이터에 설치된 나무 놀이대. 문정임 기자

공원 동쪽 초입에 자리한 빌리존슨 놀이터(Billy Johnson Playground)는 ‘작은 센트럴파크’를 콘셉트로 설계됐다. 실제 센트럴파크에 설치된 아치형 돌다리 ‘갭스토 브리지’(Gapstow Bridge)와 다각형 쉼터인 ‘덴 서머하우스’(Dene Summerhouse)를 어린이의 신체에 맞게 축소 제작했다.

놀이터에는 길이가 14m나 되는 미끄럼틀과 조합 놀이대, 그네가 있다. 그런데 놀이터의 인상은 놀이시설보다 풍경에 더 머문다. 놀이시설의 재료가 돌과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놀이터를 설계한 미국 조경사 폴 프리드버그는 놀이터 대신 ‘놀이풍경’이라는 말을 즐겼다. 시설물이 주인공인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풍경을 만들어 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바위 언덕 사이에 미끄럼틀을 넣어 아이들이 자연에서 우연히 미끄럼틀 발견하게 하는 식이다. 울창한 나무가 곳곳에 식재됐고, 화단을 따라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길들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돌계단을 오르거나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온갖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해 낸다.

빌리존슨놀이터에 설치된 화강암 미끄럼틀. 14m에 이르는 미끄럼틀이 놀이터 경사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설치돼 있다. 문정임 기자

제주의 동네 놀이터처럼 바닥을 고무 재료로 덮고 놀이기구를 몇 개 올린 곳에서는 기구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그네를 타는 아이, 그 밑에서 모래를 옮기는 아이, 엄마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오르는 아이 등 놀이 방법이 다채롭다. 어른들 역시 이곳에선 공원에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에 아이들의 놀이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빌리존슨 놀이터는 1930년대(센트럴파크 내 놀이터는 모두 이 무렵 조성됐다)에 만들어졌다. 시설이 노후해지자 공원관리협회는 2018년 수리 작업을 진행했는데, 원래의 모습처럼 공원의 시골 적인 풍경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보수를 추진했다. 이는 자연 요소를 강조하면서 자연 풍경 속에 디자인으로서 놀이 요소를 풀어낸 첫 설계 방향이 지난 90년간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엄파이어 록에서 바라본 헥셔놀이터 전경. 센트럴파크 홈페이지에서 발췌.

공원의 남쪽에는 센트럴파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헥셔 놀이터(Heckscher Playground)가 있다.

1876년 센트럴파크가 완공된 이후 뉴욕 시민은 계속 늘어갔다. 1920년 무렵 뉴욕시는 시 곳곳에 놀이터를 늘려가면서 동시에 시민들의 휴식을 위해 조성한 센트럴파크에 놀이터를 지을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시는 공원 이용자가 늘면서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공원에도 어린이 놀이공간을 만들기로 한다. 처음 조성된 곳이 이곳이다.

헥셔 놀이터는 좋은 놀이터가 가져야 하는 요소를 두루 지니고 있다. 우선 이동인구가 가장 많은 미드타운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자리해 접근성이 좋다. 놀이터의 면적은 1만 2000㎡에 달한다. 다양한 난이도의 놀이시설을 구석구석 배치해 여러 연령대의 아이들이 어울릴 수 있게 했다. 어른 키보다 높은 미끄럼틀이 있고, 4~5세 정도면 잡고 오를 수 있는 밧줄 피라미드가 있다. 바닥엔 나무 칩이나 모래를 깔았다. 쿠션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또 하나의 놀이 재료가 된다. 타이어로 만든 그네와 철봉이 울창한 나무 아래 여유롭게 자리했다.

아이들이 가장 즐겁게 뛰어노는 공간은 석성(石城)과 바닥분수다. 석성은 이집트 고대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여러 개의 중심부가 미로처럼 연결된 형태다. 이 구조물은 여러 친구와 잡기 놀이를 할 때 매우 유용하다. 아이들은 터널 기능을 하는 성 하단부를 통과해 줄을 잡고 성벽을 기어오르고, 구조물 사이에 몸을 숨기며 놀이터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혼자보단 집단 놀이를 유도한 시설물이다. 석성 바닥에는 여름이면 분수가 솟아 아이들이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놀이터 뒤로는 집채만 한 바위 동산이 있다. 엄파이어 록(Umpire Rock)이다. 뉴욕이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지반이 단단한 편암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엄파이어 록은 편암이 지표 위에 드러난 부분이다. 센트럴파크를 조성하면서 대부분은 폭파하고 몇 곳을 남겨 두었다. 정상부는 높지만 편평하고 완만한 형태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오를 수 있고 암반 위에서 쉬거나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동시에 맨해튼 섬의 지질을 탐험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헥셔놀이터는 넉넉한 공간에 자연과 놀이시설이 조화를 이루면서 지난 100년간 센트럴파크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간으로 손꼽힌다.

앤시언트놀이터 뒤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건물이 보인다. 이 놀이터는 미술관에 있는 이집트 덴두르 신전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문정임 기자

또 다른 앤시언트 놀이터(Ancient Playground)는 이름처럼 고대 건축물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인근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구경한 아이들이 그 분위기를 놀이로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메트로폴리탄의 이집트 유물 가운데도 특히 덴두르 신전에서 영감을 받았다. 놀이터는 돌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운 끝이 뾰족한 모양의 기념비), 터널, 나무집 같은 목조 요새로 이뤄졌다.

피라미드 구조물에는 줄이나 돌출된 벽돌이 있어 벽면을 타고 오를 수 있다. 아이들은 미로처럼 연결된 구조물을 오르고 매달리고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는 여러 놀이행위를 한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상상력을 발휘하고 신체를 훈련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쪽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모래장을 두었다. 모래장 가운데 오벨리스크 형태의 작은 미끄럼틀을 설치해 전체적인 디자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모래장의 단조로움을 보강했다. 놀이터 안에는 오직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

센트럴파크의 놀이터는 공원에 있지만 길거리와 맞닿은 공원 경계부에 자리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쇼핑하거나 식사를 한 뒤 횡단보도를 건너 놀이터로 들어선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은 주말에 계획한 여러 일정을 소화하면서 중간중간 아이들을 놀게 하며 다음 이동 일정을 준비한다.

센트럴파크에는 21개의 놀이터가 있고, 모두 디자인이 다르다. 뉴욕에 사는 아이들이 근거리에서 다양한 놀이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놀이터를 공원에서의 활동이나 공원 주변 주요 문화시설과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곳곳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는 여름이면 새로운 놀이 요소를 제공하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놀이터를 둘러싼 울창한 나무는 계절마다 다른 색감으로 놀이터에 새로운 표정을 새긴다. 무엇보다 센트럴파크의 놀이터는 자연에서의 휴식을 갈망하는 어른과, 놀이에 목마른 어린이들의 욕구를 도시민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실현해 준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공간이다.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