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해의 ‘지리산 약초골’ 정원, 영국 ‘첼시플라워쇼’ 금상 수상

입력 2023-05-23 16:57 수정 2023-05-23 19:36
황지해 작가가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첼시플라워쇼'에서 '쇼가든' 부문 금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황지해 제공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정원박람회 ‘첼시플라워쇼’에서 황지해(47) 작가가 금상을 받았다.

첼시플라워쇼는 23일(현지시간) 주요 경쟁 부문인 ‘쇼가든’에서 황 작가가 출품한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가 금상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황 작가는 2012년 참가한 첼시플라워쇼에서 ‘DMZ:금지된 정원’으로 한국인 최초로 쇼가든 부문 전체 최고상(회장상)과 금상을 받은 데 이어 11년 만에 다시 금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전통 화장실을 정원으로 승화한 ‘해우소’를 처음 출품해 아티즈가든 부문 금상과 최고상을 받았다.

황 작가는 “오랜만에 와서 많이 긴장했는데 무척 기쁘다”며 “지리산으로 대표된 우리나라 산의 잠재된 가치를 인정해준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해우소’ ‘DMZ’에 이어 ‘지리산’으로 이제 영국에 한국 정원이 무엇인지 확실히 각인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쇼가든 부문은 첼시플러워쇼의 하이라이트이자 주요 경쟁 부문이다. 올해 쇼가든 부문에는 첼시플라워쇼에서 14개의 금메달을 받은 크리스 비어드쇼, ‘첼시플라워쇼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그레고리, 런던올림픽공원 설계자 사라 프라이스, 영국의 스타 가든디자이너 개빈 맥윌리엄스 등 12명의 작품이 선정됐다. 황 작가는 이 부문에 선발된 유일한 동양인 작가였다.

수상작인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가로 10m, 세로 20m 크기의 정원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지리산에만 자라는 지리바꽃을 비롯해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 산삼, 더덕 등 토종 식물 300여종을 식재했으며 총 200t의 바위들로 지리산의 야성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바위 사이엔 지리산 젖줄을 표현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중심엔 약초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5m 높이 탑을 세웠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첼시플라워쇼의 쇼가든 부문 금상을 받은 황지해 작가의 작품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연합뉴스

황 작가의 작품은 전날 개막일부터 주목을 받으며 수상 가능성을 예고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2일 오후 황 작가의 정원을 찾아와 약 7분간 관람했다. 찰스 3세는 황 작가의 설명을 듣고 정원 안으로 직접 들어가보기도 했으며, “안아봐도 되냐”는 작가의 요청에 포옹을 해주기도 했다. 이날 오전엔 유명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황 작가 정원에 들러 거의 1시간 동안 관람하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황 작가는 “폴 스미스가 ‘완전히 자연적이고, 멋진 돌들이 있고 희귀 식물이 있다’며 ‘정말 특별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황 작가는 한국 토종 식생을 위주로 한 자연주의 정원을 구현하면서 한국적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광주를 기반으로 조형물, 벽화, 조경 등 환경미술 작업을 해오던 그는 첼시플라워쇼 수상을 계기로 정원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경기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황 작가의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가 전시돼 있다.

첼시플라워쇼는 영국 왕립원예협회(RHS) 주최로 1913년 시작됐으며, 런던 남서부 부촌 첼시 지역에 템스강과 접한 4만5000㎡ 규모 부지에서 열린다. ‘정원의 나라’ 영국에서는 윔블던 테니스대회보다 더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다. BBC가 대회 기간 내내 생중계를 하며, 영국 왕실이 매년 방문하는 행사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기업들도 각종 후원 방식으로 참가해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한다. 지난해에는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후원한 ‘메타가든’이 쇼가든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