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와 일부 5월 단체 간 첨예한 갈등이 시시각각 고조되고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불가분의 관계로 ‘동행’해온 시와 5월 단체가 대척점에 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5·18 부상자회·공로자회는 “오는 30일 강기정 광주시장 취임 이후 민주·인권·평화 침해·부당 인사·불법적 행정집행 사례를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23일 밝혔다.
두 단체는 지난해 ‘5·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법단체로 출범했다. 현재 2800여명과 1200여명의 회원을 각각 두고 있다. 300여명이 소속된 5·18 유족회와 더불어 5·18 정신계승 사업 등을 주도하는 대표적 5월 단체로 꼽힌다.
강 시장을 탐탁지 않게 여겨온 두 단체는 “그동안 인권탄압을 받은 광주시민과 부당한 인사 처우를 받은 공직자, 시 산하 출자·출연기관의 제보를 전화와 이메일 로 접수한다”는 방침이다. 광주시정을 이끄는 강 시장을 겨냥해 ‘선전포고’와 동시에 전면전에 돌입한 셈이다.
이들은 또 “강 시장이 지난 17일 광주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현수막을 강제로 떼어내 집어던지는 바람에 일부 5월 단체 회원들이 다쳤다”며 강 시장과 수행원 등 공무원 5명을 공동재물손괴, 공동상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22일 광주서부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맞선 강 시장도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두 단체가 고소를 예고하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 시장은 전날 “절차대로 잘 진행된 행정에 대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고발하는 것은 고발권 남용이라 생각한다”며 “엄밀히 보면 무고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5·18 추모 기간이 끝난 후 명확히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광주시는 지난 2월 특전사동지회를 초청해 ‘포용과 화해와 감사 대국민 선언’을 강행한 부상자회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교육관 위탁사업자로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혀 갈등의 불씨를 당겼다.
시는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뒤 2개월여 동안 교육관의 구체적 운영방식을 협상을 진행해온 이 단체에 대해 지난 15일 ‘부적합’ 통보하고 3차 공고 절차를 준비 중이다.
통보 직후 부상자회는 강 시장이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5·18 교육관의 공정한 위탁사업 입찰을 방해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강 시장 등 5명을 검찰에 첫 고소했다.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강 시장을 처벌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를 두고 강 시장과 시는 사실과 전혀 다른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전문기관과 협력, 구체적 협력체계·사업 내용 실현 가능성, 사업목표·실적관리, 시민 접근성·친화성 강화 방안 등 6개 항목의 보완을 2차례 요구했으나 이행하지 않아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시는 올해 초 5·18 교육관 위탁운영자 모집 공고를 낸 뒤 5·18부상자회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외부위원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사업계획서 등을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렸을뿐 정치적 의도나 개입은 없었다는 태도다.
지난달 진행된 재공모 역시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각각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두 단체 모두 기준 점수를 채우지 못해 적격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광주시는 무고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저울질하는 등 2개 5월 단체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가운데 김광진 시 문화경제부시장은 5·18 전야제 술자리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라 5월 단체와 날을 세운 강 시장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고 있다.
5·18 부상자·공로자회는 기다렸다는 듯 “전야제에 법인카드로 술판을 벌인 김 부시장은 광주시민과 5월 희생자를 욕보이지 말고 부시장직에서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시민 혈세인 법인카드로 술을 마신 김 부시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배임’ ‘공직선거법’ ‘김영란법’ 위반여부에 대해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며 확전을 예고했다.
김 부시장은 5·18 43주년 전야제가 열린 17일 밤 불로동 모 식당에서 10여 명과 함께 저녁 식사 겸한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광진, 김광진’을 연호하는 참석자들이 마신 소주와 맥주 30여 병을 포함한 식비 44만여원을 법인카드로 계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5·18 교육관’ 논란이 불거진 이후 시와 5월 단체 간 고소전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대다수 광주시민은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광주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와 5월 단체가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모습이 점입가경”이라며 “5·18 대동 정신의 헌법 전문수록 등을 위해 어느 때보다 의기투합해도 모자랄 판에 멱살을 잡고 싸운다는 게 말이냐 되느냐”고 시와 5월 단체 간 볼썽사나운 세태를 꼬집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