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가 안아준 한국 조경가… ‘K-정원’ 영국 사로잡다

입력 2023-05-23 14:16 수정 2023-05-23 14:33
22일(현지시간)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찰스 3세 국왕이 황지해 작가의 정원을 둘러본 뒤 포옹하고 있다. 황지해 제공

세계 최대 정원·원예 박람회 ‘첼시플라워쇼’에 황지해(47) 작가가 지리산에서 영감을 받은 정원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를 전시해 주목받고 있다.

23일 황 작가에 따르면, 전날 첼시플라워쇼 개막일에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황 작가 정원을 방문했다. 찰스 3세는 이날 오후 5시 반쯤 찾아와 약 7분간 머물렀다. 작가의 설명을 듣기도 하고 정원 안으로 직접 들어가보기도 했다. 찰스 3세는 커밀라 왕비와 나눠서 쇼 가든을 둘러보면서 황 작가의 정원을 가장 먼저 찾았다. 황 작가가 찰스 3세의 방문에 감동해 “안아봐도 되냐”고 물어보자 찰스 3세는 “물론이다”라며 포옹해 주기도 했다.

개막일 오전엔 유명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황 작가 정원에 들러 거의 1시간을 관람했다. 황 작가는 “폴 스미스가 ‘완전히 자연적이고, 멋진 돌들이 있고 희귀 식물이 있다’며 ‘정말 특별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유명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왼쪽)와 황지해 작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황지해 제공

황 작가는 첼시플라워쇼의 얼굴이자 주요 경쟁 부문인 ‘쇼가든’(Show Garden)에 작품을 전시한 12명 작가 중 유일한 동양인이다. 첼시플러워쇼에는 30개 안팎의 정원이 전시되는데 중심부에 배치된 쇼가든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올해 쇼가든 부문에는 첼시플라워쇼에서 14개의 금메달을 받은 크리스 비어드쇼, ‘첼시쇼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그레고리, 런던올림픽공원 설계자 사라 프라이스, 영국의 스타 가든디자이너 개빈 맥윌리엄스 등이 작품을 전시했다.

황 작가는 한국 토종 식생을 위주로 한 자연주의 정원을 구현하면서 한국적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 처음 참가한 첼시플라워쇼에서 ‘해우소: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이란 작품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2012년에도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으로 전시해 금메달과 그 해 신설된 회장상을 휩쓸었다. 황 작가는 지난해 10년 만에 다시 첼시쇼에 도전해 올해 쇼가든 부문 전시작으로 선정됐다.

영국 첼시플라워쇼에 전시된 황지해 작가의 정원 작품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연합뉴스

이번에 전시한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가로 10m, 세로 20m 크기의 정원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지리산에만 자라는 지리바꽃을 비롯해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 산삼, 더덕 등 토종 식물 300여종을 식재했으며 총 200t 무게의 바위들로 야성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바위 사이엔 지리산 젖줄을 표현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중심엔 약초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5m 높이 탑이 서 있다.

황 작가는 작품에 대해 “20억년 넘는 시간을 상징하는 바위의 밑에서 자라는 작은 식물들이 백만 년 전에서 온 편지처럼 보일 것”이라며 “지리산 약용식물의 가치와 이들을 키워낸 독특한 환경을 보여주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생, 다음 세대를 위한 행동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첼시 플라워쇼는 영국 왕립원예협회(RHS) 주최로 1913년 시작됐으며, 런던 남서부 부촌 첼시 지역에 템스강과 접한 4만5000㎡ 규모 부지에서 열린다. ‘정원의 나라’ 영국에서는 윔블던 테니스대회보다 더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다. BBC가 대회 기간 내내 생중계를 하며, 영국 왕실이 매년 방문하는 행사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기업들도 각종 후원 방식으로 참가해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한다. 지난해에는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후원한 ‘메타가든’이 쇼가든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해 세계적 이슈가 됐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