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군수산업 시스템을 바꾸는 무기 스타트업들

입력 2023-05-22 15:00
1년 4개월이나 지속된 우크라이나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무기는 육중한 탱크도, 1대에 1억달러에 육박하는 전폭기도, 초음속 미사일도 아니다. 비싸야 1만~10만달러에 불과한 소형 드론과 민간용 위성 초고속 인터넷망이야말로 전쟁의 향배를 바꾼 무기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갖춘 무기 강국인 러시아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드론에서 투하되는 수류탄과 소형 폭탄에 벌벌 떨고 있다. 아무리 통신방해기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군통신을 끊어놔도, 우크라이나 드론부대는 일론 머스크가 구축해놓은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망으로 러시아군 기갑부대와 포병부대의 위치정보를 내려받아 드론 공격을 일삼는다.

동영상 카메라가 달린 드론은 철저하게 훈련된 베테랑 정찰병보다 훨씬 더 빨리,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적의 동태를 신속하게 찾아내 결정적인 반격 정보를 제공한다.

이처럼 효과적인 드론 무기들은 엄청난 덩치를 갖춘 전통 군수산업체가 생산해낸 게 아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기민한 유연성을 갖춘 첨단 정보통신(IT) 스타트업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이같은 소규모 미국 IT 기술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새로운 전쟁의 개념을 도입하고 신무기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무기 예산을 따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유는 이들의 기술이 부족하거나 생산제품의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느려터진 펜타곤의 무기 조달 방식과 검증 과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분쟁지역 개입을 통한 대규모 전쟁과 각종 전투 경험을 가진 미군의 무기도입 체계는 지금까지 가장 합리적이고 전장에 필요한 요소를 철저하게 기획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M1A1 에이브럼스 탱크, 고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 등의 육군 무기와 F35 스텔스 전투기, 신형 아파치 공격 헬기 등은 이같은 무기도입 체계를 통해 실전에 배치된 무기들이다.

하지만 이런 무기체계의 치명적 단점은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펜타곤의 무기 검증 테스트와 조달과정, 대형 군수업체의 가격 횡포다.

에이브럼스 탱크는 1990년대초 실전에 배치되기 전까지 성능 검증에 무려 5년 이상이 걸렸고, 꾸준히 업그레이드 되고 있지만, 한대 생산비용은 업그레이드때마다 높아져 세계에서 가장 비싼 탱크가 됐다. 생산 기간도 너무 길어, 제대로 된 에이브럼스 탱크 한대를 납품받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나머지 무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당초 계획했던 예산보다 두배 이상의 비용이 들거나, 계속 납품이 지연되는데도 이미 체결된 계약 때문에 마지못해 실전에 배치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신문은 “만약 이같은 펜타곤의 기존 무기조달 시스템을 그대로 따른다면 드론무기를 만드는 신종 스타트업들은 성능 시험과정에서 파산하거나 문을 닫을 것”이라며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스타트업이 만든다해도 결국 펜타곤에 납품하려면 기술을 대형 군산복합체에 팔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드론과 위성 통신망, 인공지능(AI) 응용 무기 등은 미국 정부의 국방예산을 훨씬 더 절감하면서도 전장에서 더 효과적인 성과를 내는 무기 옵션을 제공할 수 있지만, 여전히 펜타곤은 대형 무기업체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소수의 테크기업들이 드론 등 첨단무기 제조를 위해 펜타곤과 납품 계약을 맺었지만, 전부 단기계약이거나 특정 조건을 붙힌 임시 계약이 대다수인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계약이 너무도 쉽게 종료되거나 파기돼 스타트업들이 이런 무기 조달 체계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NYT는 “우크라이나전쟁이 ‘대형 무기업체 중심의 무기 조달 체계를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과연 펜타곤의 관행이 바뀔지는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