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무가치하다는 통념을 깨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로, 올해가 벌써 6번째 대회다. 90분 동안 어떤 말과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잘 유지하면 승자가 된다. 올해는 배우 정성인(31)씨가 우승했다.
21일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로 총 70팀을 선발했는데 무려 3160팀이 지원해 참가 단계부터 45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규칙은 단순하다. 대회가 진행되는 90분 동안 참가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미리 배포된 카드를 통해서만 의사 표시가 가능하다. 빨강카드(졸릴 때 마사지), 파랑카드(목마를 때 물), 노랑카드(더울 때 부채질), 검정카드(기타 불편사항)를 집어 들면 진행 요원이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잡담이나 휴대전화 사용은 물론이고, 졸거나 딴짓을 해도 ‘탈락’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참가자의 심박 수와 현장 시민 투표를 합산해 우승자를 결정한다. 참가자들의 심박 수를 15분마다 기록하고, 대회를 관람한 시민들의 투표 점수를 더하는 방식이다.
우승을 차지한 배우 정성인씨는 “상상도 못 한 결과라 어안이 벙벙하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얼굴을 알리고 배우로서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우승자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팬이었다. 그는 “한화 경기를 보면 자동으로 멍때리게 되는데 그렇게 10년을 갈고 닦다 보니 그냥 한화 경기 본다는 생각으로 멍때렸다” “응원하는 팀이 받을 수 없는 등수를 받은 거 같은데 이것으로 만족한다” 등의 소감을 밝혀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행사를 주최한 시각예술가 ‘웁쓰양’은 “현대인은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보고 산다.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는 순간마다 피로감이 멍을 때리게 만드는 것”이라며 “‘나 혼자’만 멍을 때린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끼는데 한날한시에 다 같이 멍을 때리면 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일부 지역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작됐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일상에 지치고 힘든 분들이 휴식을 위해 한강을 자주 찾으시니 우리가 (대회를) 하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1회 대회에는 가수 크러쉬가 우승해 화제가 됐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