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심판대 오른 유류분 제도

입력 2023-05-21 19:48

‘그녀’의 아버지는 딸은 출가외인일 뿐이고 아들만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상당히 권위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섯 딸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결혼하고 분가했다. 다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아들은 끝까지 아버지 곁에 남았다.

그녀의 아버지도 세월은 어쩌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막내아들에게 증여했다. 여러 부동산은 물론 은행 예금까지 모두 막내아들에게 넘어갔다. 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에 비로소 그 사실을 알고 막내에게 증여된 경위를 물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아버지에게 심심치 않게 용돈을 드리고, 병이 들어 아프실 때는 돌아가면서 병간호까지 하였던 딸들은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딸들을 차별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들었다. 결국, 딸들은 막내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기로 했다.

유류분은 피상속인(망인)이 생전에 또는 유언으로 증여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해서 상속인에게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보장해주는 제도이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병합 심리 중인 2건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유류분 제도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첫 번째 사건은 A씨가 사망하기 전에 앞서 미망인이 된 며느리와 두 손자에게 부동산을 증여했는데, 딸들이 며느리와 손자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고, 두 번째 사건은 B씨가 생전에 공익 목적의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재산을 기부한 뒤 사망하자, 자녀들이 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다.

유류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현행 제도가 유류분 상실 사유를 두고 있지 않아 패륜적인 상속인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유류분반환청구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 등과 같은 공익에 부합하는 증여까지 유류분반환청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 문제라고 주장한다.

반면, 유류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완전히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동시에 유족들이 생계의 기초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최근 대법원은 107세로 사망한 어머니가 35년 동안 홀로 부양한 자녀에게 생전에 증여한 땅을 ‘부양의 대가’로 보고 유류분 반환 대상 재산에서 제외한 판결을 한 바도 있어서 유류분 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보통 상속 관련 분쟁은 감정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본 관계이다 보니 서로 할 말이 많은 법이고, 그런 말들에 차츰 분노가 쌓여서 감정까지 폭발하게 되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 객관적으로 중재할 누군가가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집안 어른이 나서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집안 어른이 사라져서 종국에는 가족 간 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원이 어른 역할을 하게 된 셈이 되었으니 씁쓸한 현실이다.

유류분 제도의 변화 가능성을 읽은 것인지 막내는 ‘그녀들’이 청구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