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업의 외부감사인을 지정할 때 대형 회계법인 ‘빅4’(삼일·삼정·안진·한영)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대형법인이 무조건 고품질 감사를 보장한다고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소·중견회계법인이 지정감사에서 배제되는 문제점이 여전해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국회 정무위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직권지정 1299개 상장사에 대해 4대 회계법인이 배정받은 기업개수는 579개로 전체의 44.6%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2021년과 비교해 9.51% 포인트 오른 수치다. 대형 회계법인의 지정감사 쏠림현상은 한동안 감소세를 보이다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된 이후인 2020년 34.6%, 2021년 36.4%, 지난해 43.3%(이상 직권지정·주기적 지정사 포함)로 꾸준히 늘고있다.
감사인 지정제도는 부실회계가 우려되 기업에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직접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감사인 지정사유가 발생할 경우 지정이 이뤄지는 ‘직권지정’과 6개사업연도 자유감사계약을 체결한 회사에 대해 감사인을 지정하는 ‘주기적 지정제’로 나뉜다.
지정 감사인이 4대 회계법인에 집중되는 것은 감사인 지정 방법이 대형법인에 유리하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대형 4대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을 수 있는 상장사 자산규모 범위를 기존 5조원 이상에서 2조원 이상으로 낮췄다. 4대 법인이 감사를 맡을 수 있는 상장사가 이전보다 더 늘어난 셈이다.
당국은 지정 감사가 중견, 중소회계법인으로 몰리는 현상을 초래한 ‘하향 재지정’ 제도를 손질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향 재지정 제도는 대형 회계법인의 감사를 피해 중소 회계법인으로 감사배정을 해달라고 기업이 재지정을 요청하는 제도다. 높은 보수와 고강도 감사를 피해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이 늘면서 중소중견 회계법인에 일감이 몰리자, 감사역량을 초과하는 기업 배정이 감사품질의 악화를 부를 수 있다고 당국이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하향 재지정 신청기업 개수도 2021년 (직권지정 1295개 대상) 434개에서 지난해 285개(1299개 대상)로 34%가량 줄었다.
하지만 대형법인의 감사가 반드시 고품질 회계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감사 등으로 빅4 법인이 증선위로부터 받은 감리 제재조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 이후 대형 법인의 증선위 감리지적 총 건수는 30건을 웃돌았다. 가장 많은 제재조치를 받은 곳은 딜로이트안진으로 총 10건, 삼정KPMG(8), 삼일PwC(7), EY한영(7)순이었다. 올해만 해도 지난 3월 삼일회계법인은 ‘신흥’에 대해 회계 감사절차 소홀로 1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EY한영 역시 최근 현대약품 감사 과정에서 판매장려금·관리비 관련 주요 절차를 소홀히 한 이유로 손해배상 공동기금 30%를 추가 적립하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