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 A씨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32)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A씨 딸이 “사형 아닌 판결은 생각지도 않았다”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기영은 지난해 12월 20일 음주운전 접촉사고를 무마하기 위해 A씨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이기영은 범행 이후 3일 동안 6차례에 걸쳐 A씨 돈 4788만원을 자신에게 이체했다. 또 휴대전화를 이용해 A씨인 것처럼 가족에게 132회에 걸쳐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최종원)는 지난 19일 이기영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1심 선고 다음 날인 20일 A씨의 딸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기영의 무기징역 판결에 대해 저희 가족은 슬픔과 더불어 분통 터지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A씨 딸은 “수사 과정이나 재판에서 누가 될까 노출을 극도로 자제해 왔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며 “인터넷 공간을 빌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론화하고 공감을 얻고 싶어 글을 작성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기영이 아버지인 척 어머니와 주고받았던 카톡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기영은) 교통사고를 냈는데 사망자가 생겨 그 뒤처리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설마 대화 상대가 아버지가 아닐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경찰서에 가 사고 조회를 한 결과 교통사고 접수는 아예 없었고, 아버지 실종 신고를 하고 돌아온 건 부고 소식이었다”고 전했다.
딸은 이기영이 아버지를 살해한 후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이체한 내역도 공개했다. 그는 “아버지를 죽여놓고 보란 듯이 ‘아버지상’이라고 메모해 (본인에게)이체했다”며 “사람을 우롱하는 전형적 사이코패스다. 이런 모습을 보며 너무 큰 충격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시신의 신원확인을 위해 간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장례지도사님이 아버지 얼굴의 훼손이 심해 충격받을 것이라며 보는 것을 극구 말렸다”며 “남동생이 유일하게 봤는데 범인이 둔기를 내려치는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며 오랜 시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사건이 일어난 지 이제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판결이 어제 나왔다”며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일부 공개된 탄원서에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죄를 용서할 수 없다면 그의 사과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당연히 있는 것이고,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의 강제된 사과는 피해자에게 있어 도리어 폭행과 같다”며 “구속되고 약 5개월간 피고인은 반성문 한 장 제출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런 피고인이 정말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보시는 건지 의문”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A씨의 딸은 탄원서뿐 아니라 사형제도 부활에 관한 국민청원을 접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형제도의 부활과 집행, 혹은 대체 법안에 대해 건의하는 내용의 국민청원 접수 중”이라며 “이기영과 같은 살인범이 사회에 더 이상 나오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법 제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검찰은 “조금이나마 피해자와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은 이기영이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며 사형 선고를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만일 법이 허용했다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택해서 이기영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방안을 고려했을 만큼 대단히 잔혹한 범죄”라며 “유가족의 고통 역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점을 재판부가 충분히 고민했음을 말씀드린다”고 판결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