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한·일 정상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한 것은 처음이며, 한국 대통령의 참배도 처음이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기시다 총리와 유코 여사는 이날 오전 7시35분쯤 위령비를 찾아 일렬로 서서 헌화한 뒤 묵념하며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이들은 이어 10명의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게도 인사했다.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박남주 전 위원장과 권준오 현 위원장 등 10명이 참배를 지켜봤다.
5m 높이의 위령비는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히로시마본부 주도로 1970년 4월 건립됐다. 위령비에는 한국인 사망자가 2만명으로 기록돼 있으나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사망자 수를 3만명으로 추산했다. 원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바깥에 있던 위령비는 재일 한국인과 일본 시민단체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1999년 7월 공원 안쪽으로 옮겨졌다.
윤 대통령은 참배 직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참배한 것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추모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시다 총리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지난 방한시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 총리의 용기와 결단은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도 “조금 전 윤 대통령 부부와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며 “이것은 양국 관계에 있어서도, 그리고 세계 평화를 더욱더 발전시키기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히로시마 현지 브리핑에서 “위령비 참배는 두 정상이 한·일 관계의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히 두 정상의 참배에 우리 동포 희생자들이 함께 자리한 것이 그 의미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제사회에서의 핵 위협에 두 정상, 두 나라가 공동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또 위령비 공동 참배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동안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위주로 해 왔다면 이번에는 실천을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관계자는 “재외동포청이 곧 신설되는데, 초기 프로젝트 중 하나로 윤 대통령이 말한 히로시마 원폭 피해 동포들을 초청하는 프로젝트도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히로시마=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