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아시나요? 편낳괴(편리함이 낳은 괴물)를[개척자 비긴즈]

입력 2023-05-21 05:30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열다섯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생에 쉬이 잊히지 않을 그 날. 2022년 12월 11일이었다. ‘1호 성도’의 가정에서 잊지 못할 예배를 드리게 됐다. 수레에 키보드, 키보드 받침대, 보면대를 싣고 아파트 벨을 누르자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공동 현관문이 열렸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버튼을 누른 층에 도착하자 스르르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틈 사이로 마중 나온 성도의 모습이 보였다. 전에 겪어보지 못한 감격이었다.

함께 예배드릴 수도 있다고 연락받은 초신자(1호 성도의 언니) 가족은 여행을 떠나게 돼서 볼 수 없었다. 더 많은 성도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록 우리 가정과 1호 성도 가정뿐이었지만 거실 가득히 울리는 찬양 소리, 서로의 망막에 자기 모습이 비칠 정도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눈빛과 호흡이 좋았다.

오랜만에 함께 드리는 예배의 감격은 1시간 남짓 이어졌다. 아쉬웠다(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예배 후 식탁교제를 나누는데 1호 성도가 툭하고 이야기를 던졌다.

“목사님. 예배 공간 말이에요. 가정도 좋지만 제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예배를 드리면 어떨까요? 주일 오전에는 충분히 공간을 내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배하기 더 좋은 시간대를 말씀해주시면 강의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고요.”

무조건 좋았다. 매우 대단히 좋았다. 감사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목회 멘토가 돼주던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상황 설명을 드리고 조언을 구했다. 늘 근사한 답으로 웃음 짓게 만들었던 목사님이 말했다. “송구영신 예배를 개척 감사예배로 드리면 되겠네.”

좋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달력을 보니 ‘이런! 12월 31일이 토요일이고 1월 1일이 주일? 어쩌지?’ 초보 개척자는 20일밖에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완성된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런데 밑그림을 그리면서 웃음이 계속 나왔다. ‘12월 31일에 첫 예배를 드리면 개척하자마자 다음 날 2년차 개척 목사가 되는 건가?’란 재미난 생각 때문이었다.

개척자 선배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진지하게 물었다. “올해 송구영신 예배가 토요일인데 주일예배는 어떻게 준비하세요?” 개척자들 대부분 주일 예배 한 번 드린다고 전했다. 자립이 된 교회들은 토요일, 주일 상관없이 송구영신 예배에 초점을 두고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어떡하지?’ 시간이 흐를수록 막막했다. 그러다 한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래! 토요일 오후 11시에 한 해를 정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자정이 되면 자연스레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짐예배라는 이름으로 주일 오전예배를 대체하자!’

근사한 생각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한 뒤 주변 개척자들에게 답을 찾은 것처럼 말씀드렸다. 다들 놀라했다. 그리고 부러워하기까지했다. 한 번의 예배로 송구영신예배와 주일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으니 혁신적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아주 일찍 주일 예배를 드렸을 뿐 안 드린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얼마 후 한 집사님에게 문자가 왔다. ‘목사님. 개척 감사예배를 준비하신다고 들었어요. 저희 아이들을 1월 1일 신년 예배에 보내려고 하는데 몇 시에 예배드리세요?’ 순간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했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개척 첫 예배를 드리기도 전에 하나님께 뺀질거림을 들킨 것이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마음을 견고하게 다져두지 않으면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 아니라 편낳괴(편리함이 낳은 괴물)가 되는 건 순식간이구나.’

다시 처음부터 밑그림을 그렸다. 시간은 12월 31일 오전 11시 그리고 새해 첫날 오전 11시로 확정을 지어 예배를 준비했다. 개척 공동체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는 예배를 20여일 앞두고 하나님은 초보 개척자에게 1타 강사처럼 뼈 때리는 지적을 날려주셨다. 한 집사님을 통해 가르쳐 주셨고 그 인도가 너무 감사했다. 흔들리고 있던 개척의 시작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인도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디딜 땅을 흔들리지 않게 하겠노라고 다짐하게 됐다.

개척의 날짜와 시간이 조율되고 주변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제자였던 한 청년은 연락을 하더니 달려와 두 팔을 걷고 도와줬다. 학원 강의실이 교회 예배당으로 바뀌는 일이다 보니 공간을 내어준 1호 성도도 분주했다. 그 건물 각 층을 돌아다니며 “저희가 일요일 11시에 강의실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라는 양해 말씀을 수십번 반복하고 허락을 받아주셨다.

개척은 척박한 땅에 혼자 있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난 뒤 지쳐 있는 엘리야 같지만 하나님은 7000명을 남겨 두셨다. 하나님의 도움이 보이는 시간이 바로 개척의 시간이다. 나 혼자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다.

송구영신예배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말씀 카드 뽑기에 꽃 한 송이를 더해서 ‘꽃같네’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도 준비했다. 새해를 시작하며 받은 말씀이 가슴을 물들이고 한 해 동안 소중하게 꽃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말씀 카드와 꽃을 들고 1월 1일을 맞이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니 에덴동산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개척 공동체의 첫 예배는 절대 혼자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지 말씀을 뽑고 꽃을 받아가는 것 이상의 일들은 한 청년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목사님. 우리 안에서 꽃을 나누는 것도 좋은데 새해 교회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을 나눠주면 어떨까요.” 참으로 신박한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예배가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게 하셨고 나가서 행복을 전하도록 하셨다. 떡국을 함께 먹고 싶지만 장소의 한계를 생각한 성도는 떡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셨고 또 다른 성도는 대추차를 준비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개척자Y에게도 7000명의 든든한 지원군을 보게 하셨다. 개척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은 신실하게 일하시고 계시고 이렇게 개척의 예배는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실 땅에 대한 기대가 겨울 하늘을 수놓는 하얀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