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2019년 미국 제재 이후 연구개발(R&D)에 투자한 금액은 연평균 1444억5000만 위안(약 27조5800억원)이다. 지난해 화웨이의 R&D 분야 지출 순위는 글로벌 빅테크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이어 4위에 올랐다(유럽연합 ‘R&D스코어보드’).
지난 16일 방문한 중국 선전시 화웨이 본사는 막대한 R&D 투자로 기술 굴기를 이루겠다는 열망이 드러나 있는 곳이었다. 본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안내데스크 뒤편 스크린에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미국 발명가 에디슨 등 서구의 유명 과학자들의 초상이 뜨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기간의 기초연구를 중시해야 공업이 강대해진다. 기초연구가 없으면 산업은 허황된 것이 된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이날 찾은 본사의 전시장 ‘다윈홀’, 캠퍼스 내 ‘뉴(New) ICT 전시홀’에선 향후 화웨이가 구현하고자 하는 기술 생태계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中의 ‘5G 시대’ 보여준 다윈홀
화웨이 본사 지하 1층에 있는 다윈홀은 ‘디지털·지능형 숲(Digital Intelligent Forest)’으로도 불린다. 다윈홀은 화웨이의 5G·차세대 이동통신 5.5G 관련 기술, 지능적 디지털 전환(IDX), 친환경 정보통신기술(ICT) 등에서 그간 화웨이의 성과를 소개하는 공간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화웨이는 5G 기술 고도화와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2030년쯤 6G 시대가 도래한다고 예상하고, 그 전 단계로 5.5G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이 지난해 9월 한달 간 전송한 신규 5G 메시지는 10억건이 넘는다고 화웨이는 설명했다.
이날 안내를 맡은 화웨이 본사 관계자는 5G 통신망이 중국 산업현장에서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강조했다. 스마트 항구로 설계된 톈진항은 컨테이너 운반 등에 5G와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황 다오헌 화웨이 대외협력·홍보 차장은 “톈진항과 10㎞ 떨어져 있는 사무실에서도 가중기를 원격조종해 컨테이너를 신속히 옮길 수 있다. 작업자가 더 이상 60m 높이의 가중기에서 장시간 위험한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기술로 톈진항에선 작업 비용을 30% 가량 줄였고, 에너지 소비의 경우 17% 절감을 달성했다고 한다. 상하이항, 닝보항 내에서도 이 같은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케이블을 연결하기 어려운 석탄·석유 채굴 현장에서는 5G와 마이크로파 기술이 활용됐다. 화웨이의 광네트워크가 설치된 광산에선 붕괴 사고로 작업하던 직원이 고립된 경우 벽을 두드리면 그 직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광신호가 두드릴 때 발생하는 진동에 의해 다른 신호로 바뀌는 것을 감지하는 기술에 의한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관리 전문기업 슈나이더일렉트릭의 공장 생산라인에도 화웨이의 5G 기술이 적용됐다. 전기설비 등을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공장 26곳에 전용 5G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에 따라 품종에 따른 생산라인 조정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으며, 과거 4주가 걸리던 생산 작업은 4시간 안에 가능해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업무·산업환경의 디지털화 제시한 ICT홀
같은 날 찾은 뉴 ICT 전시홀에선 화웨이의 디지털전환(DX) 기술 현황을 볼 수 있었다. ICT홀에 들어서니 대형 화면에 선전 캠퍼스 조감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플랫폼 ‘스마트캠퍼스 IOC’이었다. 이 플랫폼은 캠퍼스의 전체 시설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와이파이6’ 단말기 및 네트워크와 IT 컴퓨팅, AI 기반 보안 등의 기술이 적용됐다. 화재 등 비상 상황 시에는 경보 알림이 뜨고 화면으로 상황을 파악,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같은 기능을 뒷받침하는 하는 화웨이의 와이파이 기술과 관련해, 화웨이는 올해 선보인 ‘와이파이7’에 이어 수년 후 ‘와이파이8’ 버전도 출시할 예정이다.
화웨이의 ‘디지털 오피스’ 솔루션도 소개됐다. 화웨이는 스마트 스크린 ‘아이디어 허브’를 기업용으로 보급하는 제품이다. 스크린을 통한 고화질(HD) 화면, 무선 스크린 송출, 대형 화이트 보드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현재 베이징전력회사가 화상 회의 뿐 아니라 원격 전력 교육 등을 위해 해당 솔루션을 적용 중이라고 한다.
17일 ‘화웨이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스 콘퍼런스’ 행사에서 애론 왕 화웨이 아시아태평양 엔터프라이즈 사업부 부사장은 미·중 갈등에 따른 사업 방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2019년부터 문제가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외부환경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미국 제재 이후) 4년이 지났고, 우리는 파트너사들에게 계속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 전략은 계속 성장하며 살아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왕 부사장의 자신감 있는 발언은 화웨이의 과감하고 꾸준한 R&D 투자, 이에 따라 획득한 기술과 솔루션이 그 밑바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전=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