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즉 1인극은 배우 혼자서 만들어가는 연극이다. ‘배우의 예술’이라는 연극에서도 1인극은 배우에게 치열한 장인정신을 요구한다. 오롯이 혼자만의 연기력으로 관객과 교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가장 주목받은 모노드라마로는 단연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와 ‘온 더 비트’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뇌사 판정을 받은 청년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을 다뤘고, ‘온 더 비트’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소년 아드리앙이 드럼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배우 윤나무는 만만치 않은 두 작품에 잇따라 출연하며 ‘모노드라마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7일 대학로 TOM2관에서 개막한 ‘온 더 비트’(~6월 25일)의 재공연에 출연 중인 윤나무(38)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딱히 1인극을 선호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나를 깨부술 수 있는 도전적인 작품을 선택하다 보니 잇따라 두 편을 하게 됐다”면서 “1인극은 배우에게 큰 도전이지만 그만큼 희열도 크다”고 밝혔다.
2011년 연극 ‘삼등병’으로 데뷔한 윤나무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카포네 트릴로지’ ‘킬 미 나우’, 뮤지컬 ‘로기수’ ‘팬레터’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등 굵직한 작품의 주역으로 출연했다. 또 2016년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로 브라운관에 데뷔한 이후 드라마에서도 개성적인 역할로 꾸준히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고 있다. 그는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해서인지 드라마를 병행하는 지금도 1년에 1편 이상의 공연을 하려고 한다”면서 “공연을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게 나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독특한 이름 ‘윤나무’는 예명으로 그의 본명은 ‘김태훈’이다. 데뷔한지 얼마 안 됐을 때 같은 이름이 너무 많다며 선배 배우 김수로가 지어줬다. “2014년 뮤지컬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준비할 때 연습실 이름이 ‘나무 연습실’이었어요. 이름을 정한 뒤 성경 구절에서 모티브를 얻어 ‘울창한 나무가 되어 그 사람들을 연기라는 그늘 밑에서 쉴 수 있게 해라’라는 의미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이름을 만든 게 아니라 이름이 사람을 만든 거예요. 하하.”
연극 ‘온 더 비트’는 뛰어난 몰입감과 속도감 있는 전개, 넘치는 에너지와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프랑스 배우 세드릭 샤퓌가 직접 대본을 쓰고 2003년 초연했으며, 2021년 아비뇽 오프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1인극상을 수상했다. 한국 버전은 프랑스 버전보다 상연시간이 30분 늘어났는데, 아드리앙의 내면을 좀 더 세밀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고스트 노트’에 대한 이야기나 정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장면은 한국 버전만의 매력이다.
그런데,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윤나무지만 이번 작품의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드리앙을 비롯해 극 중 여러 인물을 홀로 연기하는 것보다 그에게 걱정됐던 것은 처음 접하는 드럼 연주였다. 드럼이 단순한 악기를 넘어 아드리앙의 확장된 자아이자, 리듬과 박자야말로 아드리앙이 세계를 읽는 방식이기 때문에 서툴러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그는 “2021년 이 작품에 캐스팅되고 나서 드럼을 처음 배웠다. 악기 전공자는 고사하고 드럼을 막 시작한 내가 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한다는 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드럼 연주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지만 그의 연주 실력은 연기와 어울어져 지난해 초연 내내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재연인 올해는 여유가 생겼을 법하지만, 그는 “여전히 드럼이 익숙지 않다”면서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했다. 그는 “이 작품의 프랑스어 원제(‘Une Vie Sur Mesure’)가 우리말로는 ‘적합한 역할’이나 ‘딱 맞는 옷’의 의미라고 한다. 이 작품을 만나면서 내게 적합한 역할을 많이 고민했는데, 극 중 아드리앙처럼 모험과 도전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이 작품 덕분에 담력이 생겨서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하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피력했다.
한편 그는 지난해 신작 창작 뮤지컬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로 한국뮤지컬대상 배우 부문 남자주연상을 받았다. 과거 어느 독재자의 대역배우였던 괴짜 노인 역으로 관객과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노래에 대한 부담 때문에 뮤지컬보다 연극에서 보다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쇼맨’을 통해 뮤지컬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는데, 어렵더라도 아드리앙처럼 도전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웃었다. 그는 ‘온 더 비트’를 마친 이후 오는 9월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재연으로 다시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