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광주를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와의 만남에 대해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17일 광주 북구에 위치한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문 전 대통령은 같은 날 광주를 방문한 전우원씨에 대해 ‘만날 생각이 있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특별히 계획을 갖고 있진 않지만 계기가 된다면 못 만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광주를 방문한 것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동선이 겹치는 것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제 5·18은 광주 시민뿐 아니라 온 국민 함께 추모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5·18 묘역에 참배할 수 있는 분들은 참배하고, 못하는 분들은 마음으로라도 추모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작년에 5·18 앞두고 퇴임해 참배하지 못하면서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오늘 참배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만 답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참배단에서 헌화와 분향을 한 뒤 고 문재학 열사, 고 한승헌 변호사, 고 이한열 열사 등의 묘소를 찾았다. 특히 문 열사 묘소에서는 묘비를 어루만지며 그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문 열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도 언급했다. 5·18 당시 광주상고 1학년이었던 문 열사는 최후항쟁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앞서 전우원씨도 지난 3월 문 열사 묘소를 참배하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으로 묘비를 닦아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들어서면서 출입로 바닥에 묻혀 있는 이른바 ‘전두환 표지석’은 밟지 않고 지나가 이목을 모았다. 전두환 표지석은 전씨가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 방문을 기념해 세운 것인데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1989년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어놨다. 반면 이날 오후에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두환 표지석을 밟고 지나가 대조를 이뤘다.
참배 후 문 전 대통령은 취재진 앞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5·18민주항쟁에 크게 빚을 졌다. 우리 국민이 오늘날 이만큼 민주주의를 누리는 것도 5·18민주항쟁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며 “그래서 민주주의가 흔들리면 우리는 5·18 민주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5·18민주항쟁은 대민 민주주의 뿌리가 됐다. 5·18을 맞이해 국민이 함께 그 의의를 새기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다시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제가 공약을 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 재임 중에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었다”면서 “그것이 당시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되지 않아 (끝내) 못했던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정치권이 같은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